추위가 물러가고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4월, 1948년 제주의 4월은 봄향기가 아닌 피내음이 감돌았다. 이후에도 제주 사람들은 4ㆍ3의 아픔을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4ㆍ3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올해는 좀 더 특별하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지슬’을 필두로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 문학콘서트, 재일제주인 사진전 등에 이르기까지, 4ㆍ3을 좀 더 문화예술적으로 풍성하게 다루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4ㆍ3 관련 문화 콘텐츠들을 살펴보며, 현재 제주의 주역인 우리들이 앞으로 4ㆍ3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 보자.


▲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포스터
>> 4ㆍ3 앞두고 6만 관객 돌파한 ‘지슬’
시적 영상의 감동적인 진혼굿

제주 4ㆍ3을 다룬 제주 출신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는 4ㆍ3 당시의 비극과 그 속에서도 순박함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당시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흑백의 영상미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3월 1일 제주에서 먼저 개봉했으며 3월 21일 전국 개봉했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았던 이 작품은 이어 지난 1월 26일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4ㆍ3 당시 가해국이었던 미국으로부터의 이 같은 수상은 제주4ㆍ3문화예술계의 괄목할 만한 성과다. 나아가 지난 3월 12일에는 프랑스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에서 장편영화 경쟁부분 대상에 해당하는 황금수레바퀴상을 수상하기도 해 계속해서 작품성을 입증받고 있다.
 
극장가에서의 인기 또한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10일 만에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5만 관객을 돌파한 데 그치지 않고 다음날 1일에는 6만 관객을 돌파했다. 소리 없이 강한 모습을 보이는 영화 ‘지슬’은 관객들로 하여금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영상미”, “눈물 날 겨를조차 없는 감동” 등의 다양한 찬사를 받아내고 있다.
 
영화는 신위-신묘-음복-소지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당시의 참상을 하나의 제의로 묘사해 마치 4ㆍ3 영령들을 달래고 위무하는 진혼굿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담아내는 흑백의 영상미는 이러한 신묘하고 무속적인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다.
 
영화 제목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 제주 사람들의 양식이자 서로를 이어주는 끈인 지슬은 장면마다 끊이지 않고 등장해 따뜻하고 소박한 제주 사람들 그 자체를 상징한다. 적대관계인 군인에게도 서슴없이 내어주고, 어머니는 불타는 집 속에서 타지 않도록 지켜내며, 아들은 그것을 가져다 눈물을 머금고 마을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련의 장면들과 함께 지슬은 그 숭고한 가치를 더한다. 이렇듯 아픈 역사를 단지 아프게만 그리지 않고 초월적 시각으로 풀어낸 영화 지슬은 4ㆍ3 문화예술계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영화를 본 윤신혜(회계학과 2)씨는 “4ㆍ3의 아픈 역사를 이렇듯 아름답게 시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 놀라웠으며,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며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는 소감을 전했다.


▲ 임흥순 감독의 영화 ‘비념’ 포스터
>> 외지인의 시선으로 본 4ㆍ3 영화‘비념’
세상을 울릴 가장 아름다운 노래

또 하나의 4ㆍ3영화 ‘비념’은 4ㆍ3 당시 남편을 잃은 강상희 할머니의 개인사에서 출발한 다큐멘터리로, 4월 3일 제주에서 개봉한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의 토속적 색채를 강하게 지닌 오멸 감독과 달리 ‘비념’의 임흥순 감독은 제주에 별다른 연고가 없는 서울 출신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비주얼 아티스트인 그는 2009년 제주도 여행 당시 동료였던 ‘비념’의 김민경 PD의 외할머니인 강상희(88)씨의 사연을 듣고서 4ㆍ3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으며 그 계기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바깥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본 제주도를 영화는 올레 코스를 따라 돌아다니며 덤덤하게 보여준다. 바깥사람에게 관광지로만 인식돼 있는 제주도가 사실은 곳곳에 비극의 역사가 잔재하는 곳임을 보이는 것이다.
 
‘비념’은 제주 무속 세 가지 중 가장 간단하게 치러지는 굿으로 ‘비나리’라고도 한다. 끊임없이 기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중간중간 죽은 원혼을 달래고 평화를 기원하고자 굿을 하는 장면이 삽입돼 있다.
 
영화 ‘비념’은 죽은 자의 시선을 통해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강상희씨부터 시작해 곳곳에 살고 있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유령처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쓸쓸한 눈밭, 바람 부는 풍경, 샛노란 감귤밭, 곤충과 동물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제주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한다. 개개인의 아픔에서 출발한 4ㆍ3의 역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끝나지 않고 6년째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의 사태를 통해 현재화된다. 4ㆍ3 때 군인들의 발포 소리와 함께 죽어나가던 민중들의 모습 직후, 지금 현재 검은 연기와 함께 폭파되는 구럼비의 모습이 나와 앞 장면과 연결된다.
 
임흥순 감독은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며 “누구의 죽음이든 하찮지 않은 것은 없으며, 생명과 자연을 경시하는 한국사회의 폭력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념에 물든 사회 안에서 제주자연이 지닌 노란빛의 색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며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제주 그 자체를 영화를 통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영화를 본 강정마을 주민 민경씨는 “지슬과 비념을 다 봤다. 4ㆍ3을 다룬 영화들이 나온 자체에 감사한다”며 “‘비념’이라는 영화는 제주의 아픈 역사를 현재 시점의 제주와 연결시켜 잘 풀어낸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 제20회 4ㆍ3문화예술축전 포스터
>> 참신한 문화콘텐츠의 장, 4ㆍ3문화예술축전
4ㆍ3예술 20년, 역사를 기억하다

지난 1일부터 5월 11일까지 제주도 일원에서 열리는 4ㆍ3문화예술축전은 전년보다 참신한 문화예술적 콘텐츠를 4ㆍ3 속에 가미해 아름다운 예술로써 4ㆍ3의 역사를 보듬는다.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제주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박경훈)의 4ㆍ3문화예술축전은 ‘저 산 위에, 아름다운 꽃그늘 아래 4ㆍ3예술 20년, 역사를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를 내놓고 있다.
 
1일부터 10일까지 4ㆍ3평화공원 예술전시실에서 열리는 강정효 작가의 사진전 ‘60년만의 귀향, 2박 3일의 기록’은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고향을 떠나서도 4ㆍ3의 기억 속에 악몽과도 같은 세월을 보내야 했던 재일제주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난 2008년 4ㆍ3 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초청으로 도쿄, 오사카, 교토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과 일본인 등 140여명이 60년만에 제주를 찾아와 보낸 2박 3일의 짧은 여정을 작가는 밀착 취재해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2박3일 동안 4ㆍ3평화공원 방문, 4ㆍ3전야제, 4ㆍ3위령제 참석,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방문, 4ㆍ3해원상생굿 관람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오는 4월 5일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는 4ㆍ3과  함께 문인의 길을 걸어온 시인 김경훈의 ‘김경훈 4ㆍ3문학콘서트-벙어리 사만이의 언어들’이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오후 6시 30분부터 열린다. 오랫동안 제주4ㆍ3을 시와 마당극으로 형상화해 온 김경훈 작가의 이번 문학 콘서트는 말 그대로 시와 노래, 연기가 어우러지는 종합극적인 형식을 취한다. 작가의 작품을 노래로 만들어 노래패가 들려주기도 하고, 동료 배우들이 나와 아픈 상황을 연기로 상황 연기로 보여준다.
 
또한 ‘성산 일출봉에서’, ‘저기 어둠 속에’ 등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연기로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의 입을 통해, 작품을 통해 그는 ‘벙어리 사만이’의 말 못할 사연을 전한다. 벙어리로 강요받으며 살아온 지난 인생과 현재의 여러 4ㆍ3담론들을 풀어낸다. 더 나아가 제주4ㆍ3문화예술의 반성과 미래에 대한 공감대도 만들어진다.
 
이밖에도 4ㆍ3문화예술축전을 대표하는 거리굿 ‘기억과 동행하다’가 지난 2일 5시부터 제주시청 마당에서 열렸다. 이밖에도 4ㆍ3의 넋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4월부터 5월동안 선보여진다. 행사 문의는 제주민예총(064-758-0331)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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