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석(사회과교육전공 교수)
최근 제주 사회의 담론체계에서 ‘제주인’은 이념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늘 그 중심에 놓인다. 제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제주인으로 살아가며, 흔적을 물려준다는 것은 곧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실 인식의 틀이 되어 왔다.

제주문화, 제주인이라는 용어가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도로교통망의 형성,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망의 구축, 의무교육의 실시 등 객관적 조건들이 마련되어가던 시기에 이들 용어의 수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타자와 제주인을 구분하는 일련의 일들을 정리하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1946년 도(道) 승격과 20세기 후반 민선자치의 출현을 꼽을 수 있다. 과거 전라남도에 속해 있던 제주군은 1946년에 전라남도에서 분리, 본격적인 독립된 도 단위로 승격된다. 제주도 승격은 이후 ‘제주인=제주도민’으로 이어지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특정한 정치공동체에 속한다는 의식은 주민의 자기 위치 확인에 필수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치공동체에 속하는지,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규칙과 문화적 틀 속에서 살게 되는 지가 상당부분 이로써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 제주도 노래, 제주도 기(旗)와 각종 상징물은 근현대적 ‘제주인’을 자각시키기 위한 결과물이다. 그것은 제주인을 관념적으로나마 ‘우리’라는 연대감으로 결속시켜 줄  새로운 상징과 수사의 필요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전통적인 덕목인 수눌음과 같은 상부상조의 미덕이 주목을 받게 된다.
 
둘째, 유구한 전통의 공동체가 강조되면서 전통에 대한 가치가 새삼 중시되었다. 예컨대 제주도청 기관지인 『제주도』의 경우 특집을 통해 제주인의 전설, 신화, 의식주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가령 “제주도 명물의 재발견”(1973), “제주도의 의, 식, 주”(1975), “제주도전통문화의 재정립”(1977), “제주인ㆍ제주도 정신”(1979)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제주인이 지향해야 할 실천운동과 이념적 지표로서 ‘삼무정신’, ‘조냥정신’ 등이 제시되었다.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화, 지방화 시대의 전략으로 100만 제주인의 개념범주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제시된 바 있다.
 
셋째, 지역공동체 정신의 강조이다.  20세기 후반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제주인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여기서 지방정부는 주민을 하나로 묶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제주사정립추진위원회의 활동도 제주인의 뿌리찾기 작업과 아울러 제주의 지역 독자성을 확인하고 도민의 연대감을 마련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 2011년 제주도의회가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개최한 해군기지 관련 행사이다. 어울림마당처럼 시민적 제주인을 위해 공적 사용이 가능할 수 있는 제도적ㆍ문화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나타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놓고 볼 때 지금까지 논의의 핵심은 혈연적 제주인이었다. 그것은 도민들을 하나로 묶어줌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창출하는 문화적 기제로 작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혈연적 의미의 제주인이라는 자부심과 동질성이 사회적 동력으로 작동하기에는 오늘날 이념, 계층, 세대간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 구호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사회통합’, ‘화합’이 미덕으로 자리 잡던 때가 지났다고 판단된다. 제주인이 통일성을 강조하는 혈연공동체의 인식에 머무는 한, 다양성의 공존과 연대에 기초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아웃사이더인 내게 우리의 조국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외친 버지니아 울프의 날선 반문을 진지하게 경청해야만 한다. 그것은 한 집단의 정체성의 억압을 뚫고 나온 타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적 주체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울프의 항변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 농어촌 주민 등과 같은 주변화된 타자를 배제할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서 주변화된 제주인의 항변이기도 한 것이다. 21세기 제주인은 유기체적 성격을 벗어나 자기 자신을 타자로 인식하는 동시에 타자를 동등한 제주인, 즉 시민적 주체로 인정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겠다.
 
사실 현실을 인식하는 틀이 바뀔 때 실천의 방식이 달라진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집단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실천의 지향이 달라진다고 한다면 결론에 대신해서 ‘혈연적(ethnic) 제주인’에 대비되는 ‘시민적(civic) 제주인’을 제안하고자 한다. 경쟁과 이해갈등으로부터 상생의 새로운 규범과 통합시스템을 찾아내야 하는 오늘날 ‘시민적’이라 함은 무엇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규정적 특성을 갖는, 그러면서 다양한 주체적 입장들이 조화되고 언제든지 가변적일 수 있는 그 자체의 임시적인 아이덴티티를 갖는 주민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혈연적 제주인’이 비공유적, 배타적, 현상고수적이었다면, ‘시민적 제주인’은 공유적, 매개적, 미래이행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화가 가져온 변화된 환경 속에서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인의 경우 ‘시민적 제주인’의 개념은 가능한 것일까? 이 지점에서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때 완전한 시민적 정체와 세계시민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칸트의 언급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계시민사회’, ‘세계시민의 정체성’, ‘이성의 공적사용’ 이들 3자간 불가분의 관계를 간명하게 요약해주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성의 공적 사용이 철학자들의 수사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서 가능하다고 한다. 그것은 사익에도 국익에도 갇히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곶자왈을 훼손하여 골프장이나 리조트를 건설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그것은 개인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판단의 근거가 국익에 의한 것도 아니다. 또한 다문화 가정 이주민에 대한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단지 나에게 좋으니까 아니면 국익에 부합하니까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모두는 이성의 공적 사용, 즉 공공성(offentlichkeit)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의사소통을 하는 한정되고 닫혀 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의 특징은 바깥으로 열려있다는 것, 즉 그 범위에서 최종적인 한계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석적 차원에서 그것은 국가적/지구적 공공성, 직능적/사회적 공공성, 중앙/지방의 공공성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하나의 근본원리 즉 이성의 공적 사용에 근거하고 그런 전제 위에서 각 영역 간의 바람직한 소통과 교류가 가능하다.
 
따라서 ‘시민적 제주인’ 개념은 이성의 공적 사용이 가능할 수 있는 제도적ㆍ문화적 장치가 마련되고, 이를 가능한 수준에서 현실화시키며 현실화된 제도를 부단히 개선해 가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발상은 ‘혈연적 제주인’을 뛰어넘을 때 가능하다. 물론 제주주민들에게 혈연적 동질성에 근거한 태도는 상당한 정도의 영감과 연대를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혈연의식을 넘어선 시민적 제주인을 형성하는 태도가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아닌가 한다. 이를 위해 문화적인 다양성과 관용,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제주인 정체성의 형성과 제도화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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