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데나 공군기지는 너무나 광활해서 활주로 넘어 도열해 있는 전투기와 격납고들이 작은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화와 환경보전을 주장하는 오키나와 현지인들의 반미(反美) 목소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에게 ‘군사기지 68년’의 역사는 아픔과 분노의 기억으로 점철돼 있다.
 
집집마다 방음창을 설치했지만 주택가 바로 인근에 위치한 활주로 때문에 비행 소음은 귀를 찢는다. 또한 잊을 만하면 재발하는 미군들의 사건ㆍ사고에 주민들은 진저리를 낸다. 2004년 8월 13일에는 오키나와 국제대학 본관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기도 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기지의 위험성을 새삼 각인시켰다.
 
카데나 공군기지 앞에서는 10여 명의 현지 주민들이 ‘양키 고 홈(Go Home)’을 외쳐대고 있었다. 각종 손팻말과 빨간색 티셔츠에는 ‘Osprey No’가 쓰여 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제발 미군기지 좀 없애 달라’고 절규하고 있었다.
 
▲  현지 주민들이 카데나 기지 앞에서 오스프리 수송기 배치 반대를 외치며 반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내걸고 있는 구호는 ‘오스프리(Osprey) 배치 반대’다. 미군의 신형 수직 이착륙 수송기인 오스프리는 최근 5년간 38건의 사고를 낸 비행기다. 미국은 이 항공기 12대를 오키나와 남부 인구 밀집지역인 후텐마 기지로 들여왔고, 올해 카데나 기지에 수십 대를 더 도입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기지 탓에 수십 년간 겪어온 소음 피해에, 비행기가 언제 머리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떠안게 됐다. 그 순간에도 카데나 기지의 헬기들은 주변 상공을 맴돌았다.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한 주민은 “일본 당국은 오키나와가 자국 방위와 미일 동맹을 위해 희생해 주기를 바란다”면서 “오키나와에 군사기지가 있는 이상 평화의 섬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밝힌 또 다른 주민은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치른 오키나와의 무고한 희생과 제주의 아픔이 닮았다”면서 “우리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많은 고통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본토 대중들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응어리진 가슴을 제대로 풀어낼 기회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반미시위의 배경에는 태평양 전쟁기간의 오키나와전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체득한 현지인들의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까지 류큐라는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했던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의 전진기지로 전쟁의 한복판에 섰고, 전후에는 미국에 의해 강제 기지화된 뒤 1972년 일본에 반환됐다. 이 때문에 현지인들의 감정은 미국이나 일본 정부 양쪽 모두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취재단이 오키나와에서 본 미군 기지는 후텐마와 카데나 기지 두 군데였다. 사키마 미술관에서 바라본 후텐마 기지는 일부가 숲에 가려 활주로를 포함한 기지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후텐마 기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카카즈 코타이공원 전망대에서 3~4명의 현지인들이 기지를 근접용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4층 건물의 미치노에끼 전망대에서는 광활한 카데나 기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카데나 기지의 활주로에 F-15 전투기가 이륙을 준비하는 동안 너른 개활지는 비어 있었다. 이어 저 멀리로 엉덩이에 불을 단 F-15가 굉음과 함께 솟구쳤다. 카데나 미공군기지의 3.3㎞ 활주로를 내달은 F-15는 행선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카데나 기지는 총면적 445㎢, 오키나와의 남북을 가르는 중앙부에 위치해 섬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곳 미치노에끼 전망대에서는 평화 활동가들이 매일 기지를 관찰하거나, 학생들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평화교육을 벌이곤 한다. 또한 전망대에는 먼 곳을 근접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와 영상용 카메라를 지닌 오키나와 현지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카데나 기지에서 뜨고 내리는 F-22 스텔스나 F-15 이글스와 같은 전투기의 사진을 찍어 매스컴에 송고하거나 사진으로 인화하여 판매하는 사람들이다.
 
전망대에서 만난 평화활동가들은 ‘기지 없는 평화의 섬’을 강조하며 미군기지의 해외 이전만이 오키나와의 평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군대는 주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깨달음은 미군기지의 철수가 전쟁 없는 오키나와를 이룰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굳어졌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