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광명 지음『재일제주인의 삶과 기업가활동』

2010년은 제주도 출신자가 일본 이주를 시작한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현재 재일(在日)제주인은 2012년 기준으로 재일한인 54만5401명 중 8만6231명으로 약 15.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징병ㆍ징용 등 강제적으로 이주(involuntary emigration)되거나 해방 이후 제주 4ㆍ3사건과 한국전쟁을 피해,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출가해녀(出稼海女) 등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 대부분은 도쿄(東京) 미카와시마(三河島)나 오사카(大阪) 이쿠노구(生野區) 등의 대도시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관동(關東)과 관서(關西)지역을 중심으로 재일제주인의 커뮤니티(community)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1923년 제주도와 오사카를 잇는 직행항로(直行航路)가 개설되어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가 취항하면서 공업이 발달했던 오사카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으로 이주한 제주도 출신들 중 남성들은 대부분 조선, 탄광, 토목공사 등에 단순노동으로 투입되었고, 반면 여자들은 주로 방적과 고무공장에서 일하면서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중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다.
 
또한 재일제주인은 이주 초기 자발적으로 이주(spontaneous emigration)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 정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사회ㆍ문화적 갈등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본 사회 속에서 자긍심과 애향심, 그리고 상호간 인적교류를 통해 재일제주인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찾고자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일본 이주에서부터 정착과정에서 필요한 직업을 구하고,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일까지 삶의 변화에 따른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활용되었다. 특히 재일제주인 기업가들은 일본 사회에서 초지관철, 시간엄수, 성실, 신용, 인내, 인간중심경영 등을 경영정신으로 삼아 상당한 경영성과를 이룩하여 재일제주인의 자본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국생활의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보다 고향의 어려운 현실을 더 걱정했다. 이들의 애향심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교량가설, 도로 확ㆍ포장, 상수도, 전화ㆍ전기가설, 학교시설, 마을회관 건립에 이르기까지 고향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1965년부터 1984년까지 20년간 고향에 보낸 감귤묘목 기증(묘목 426만7000본)은 감귤재배 농민의 소득 증대와 함께 제주도 감귤산업을 기간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도 이들은 제주도 지역개발을 위하여 심적ㆍ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교육ㆍ문화사업을 비롯하여 관광산업ㆍ금융ㆍ경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직접 참여하면서 자본을 투자하였다.
 
현재 제주도는 재일제주인 1세들의 많은 기증과 투자 활동으로 눈부신 발전을 달성하였다. 제주도의 지역총생산(GRDP)은 1946년 23억원에서 2011년 11조1290억원으로 급성장하면서 1인당 소득도 8만8000원에서 2149만원(2290배)으로 크게 상승했다. 감귤  생산량은 1946년 10톤에서 2011년 64만8000톤(6만4800배)으로 증가하여 제주도민의 농가 소득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재일제주인의 역할은 제주지역 사회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제주도 산업발달과 도민소득 향상에 한 축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광명(高廣明) 박사가 저술한 『재일(在日)제주인의 삶과 기업가활동』(탐라문화연구소 간행)은 재일제주인의 이주와 삶, 경영활동 특성, 기업가활동(entrepreneurship) 사례 등에 관해 잘 살펴본 저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지금까지 재일제주인과 제주도와의 관계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상호 동반적 관계로 생각하기보다는 제주도 출신들이 지역사회에 일방적으로 물질을 제공해 주는 대상으로만 인식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주제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본서는 재일제주인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전부 3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재일제주인의 의미와 유형(제1장), 이주 역사(제2장), 인구와 생업(제3장), 사회적 네트워크 특성(제4장), 지역사회 공헌(제5장) 등 재일제주인의 이주와 삶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2부는 재일상공인의 상공업활동 실태(제6장), 경영활동 특성(제7장), 기업가 유형별 특성(제8장), 사회적 배경(제9장) 등 재일제주인의 경영활동 특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3부는 호텔업, 유기화학공업, 전기전선공업 등으로 제주도의 관광산업, 경제, 교육,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동천(東泉) 김평진(金坪珍)(10장), 고당(古堂) 안재호(安在祜)(11장), 효천(曉泉) 강충남(康忠男)(12장)의 기업가활동 사례에 대해 고찰하였다.
 
지금까지 재일제주인 관련 연구는 이주 역사, 언어, 문화, 생활사 등 역사학, 언어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분야에서 논문이나 저서 형태로 출간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재일제주인의 삶과 관련된 기업가활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이에 본서는 재일제주인의 삶과 기업가활동을 다룬 연구서로서 저자가 논문,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출간하게 된 것이다. 이들 논문들은 각각 집필 당시의 문제의식과 자료조사(문헌조사, 현지조사)에 기초하여 작성되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론적 내용이나 자료처리 등에 부적절하거나 불충분한 점도 없지 않다.
 
아무쪼록 본서는 비록 통일된 주제로 작성되지는 않았지만 책의 제목과 성격에 맞추어 부분적으로 내용을 수정하고 일부 통계 등을 추가하여 재일제주인의 정체성과 자긍심, 애향심에 대한 의미를 피력하고자 했다. 비록 완벽한 책은 아닐지라도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재일제주인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이 본서를 통해 재일제주인의 삶과 기업가활동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재일제주인의 이주와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더불어 재일(在日)한인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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