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석(경영정보학과 교수)

우리나라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953년에 69달러였는데 2010년에 2만 달러를 넘을 만큼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OECD 36개국 중 27위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의 수학 성취도는 조사에 참여한 50개국 중 2위이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도는 50위인 꼴찌이다. 우리의 객관적인 성과지표는 훌륭하지만 정신적인 가치만족은 저만큼 뒤처져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작 열심히 하는 일에 의미부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일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2011년 한 조사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일을 하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보수를 받기 위한 수단’이라는 응답이 74%로 나타났다. ‘경력을 쌓아가는 수단’을 선택한 사람은 51%로 나타났고, ‘일하는 자체가 좋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일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할 뿐이지 보람이나 자아실현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소명의식으로 연결 짓지 않았다.
 
사람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공간에 대한 원근법과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가까운 시간에 대해서는 지엽적이고 구체적인 나무를 보는 반면에 먼 시간에 대해서는 전체적이고 추상적인 숲을 보는 성향을 갖는다. 예를 들어, 대학 신입생이 먼 미래에 속하는 졸업을 생각하면, 어려운 과목일지라도 배우는 것이 많은 유익한 과목을 들으려 한다. 내일 당장 수강신청을 할 때는, 아침 1교시를 피하고 과제물이 적으면서 학점은 후한 수업을 선택한다. 먼 미래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목적과 바람직성을 떠올리는 반면에, 가까운 미래를 떠올리면 그 일을 수행하는 수단과 실현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이 때문에 먼 미래를 떠올리는 사람일수록 추상적인 사고를 하여 가까운 미래에 초점을 두는 근시안적인 사람들보다 자기통제를 더 잘하고 만족도가 높다.
 
마약중독자와 일반인에 대해 가상의 시간 시나리오를 채우는 연구에서 마약중독자가 평균 9일의 미래를 생각하는 반면에 일반인은 4.7년으로 나타났다. 시간인식에 대한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먼 미래를 생각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대인관계와 학업성적이 좋고 문제해결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의 칼 린네(1707년-1778년)는 식물과 동물의 분류체계인 이명법을 발명하였다. 사람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명명한 이가 린네다. 학생이던 25세의 린네는 스웨덴 북극지방 라플란드로 2천km의 거리를 5개월 동안 탐사하였다. 1735년에 <자연의 체계> 초판을 발행했는데 당시 단 12쪽에 불과했다. 그의 평생 연구는 1768년까지 12판의 책으로 이어져, 약 15,000종의 생물을 담는 2,300쪽의 방대한 연구물로 남았다.
 
린네는 동식물 표본을 수집하기 위해 17명의 제자들을 세계 각지로 보냈다. 소명의식이 강했던 17명의 제자들은 1745년~1799년 동안 러시아, 시베리아, 북미, 남미, 아프리카, 인도,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태평양 제도, 북극해, 남극해까지 탐험을 하였다. 이후 약 50년 뒤에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섬에 갔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곳이 린네학회였다.
 
동양고전 회남자는 “사슴을 쫓는 자는 태산을 보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근시안적인 현실에 급급하다 보면 오히려 먼 미래의 이상을 놓치게 된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일에 대해 자신만의 추상적인 가치를 부여하면 그 일이 즐거워지고 어떤 상황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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