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형철 시집『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시를 ‘국밥’에 견준 어느 시인의 표현에 공감한다. 따뜻한 국밥을 생각해 보라. 국밥은 비싸지 않아 괜찮고, 간편하고 빨리 먹을 수 있어 좋다. 추운 겨울이 제격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언 몸을 녹여준다. 국밥만으로 공허하다면 소주를 벗하여 생활이나 인생 이야기로 핏대가 드러나게 열을 올려도 좋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했으니 다툴 일 없다. 얼큰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용돈이라도 몇 푼 쥐어주고 잠자리에 들면 하루가 행복하다. 국밥 한 그릇이 주는 행복이 이와 같을진대 마음에 드는 시나 시집은 말해 무엇하랴. 시는 우리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주며, 그 울림은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래 일주일에 시집 한 권은 읽어야지 하지만 생각뿐, 잘 실행되지 않는다. 올해는 90년 만의 불볕더위라, “뒌벳듸 나뎅이지 아년다.”(된볕에 나다니지 않는다.)는 말에 집과 연구실을 오가며 원고 작업에 열중했다. 틈틈이 음악을 듣고, 시집도 여남은 권 읽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강형철의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이다. 제목이 외롭고 쓸쓸하다는 느낌에서 구입한 시집이다.
개인적 시 읽기 습관대로 ‘시인의 말’을 읽고, 첫 번째 작품인 「야트막한 사랑」을 읽는다. 왜 ‘낮은 사랑’이 아니라 ‘야트막한 사랑’일까 생각하며 마지막 시로 훌쩍 뛰었다. 첫째와 마지막은 상징성, 갈무리라는 점 때문에 대개는 시인 자신이 아끼는 시를 배치하기도 하니 그렇게 읽는 버릇이 생겼다. 다음에 소개하는 「아버님의 사랑말씀 6」이 시집 마지막을 장식한 시인데 그게 덜컥 걸린다. 시를 읽으며 흐릿한 시야 때문에 돋보기를 벗어보기는 이 시가 처음이다.


너 이놈으 자식 앉아봐 아버지는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그도 못살고 저그도 못살고 오막살이 이 찌그러진 집 한칸 지니고 사는디 넘으 집 칙간 청소하고 돈 십오만원 받아각고 사는디 뭐 집을 잽혀야 쓰겄다고 아나 여기 있다 문서허고 도장 있응게 니 맘대로 혀봐라 이 순 싸가지없는 새꺄 아 내가 언제 너더러 용돈 한푼 달라고 혔냐 돈을 꿔달라고 혔냐 그저 맻날 안 남은 거 숨이나 깔딱깔딱 쉬고 사는디 왜 날 못살게 구느냔 말여 왜! 왜! 왜! 아버지 지가 오죽허면 그러겄습니까 이번만 어떻게…… 뭐 오죽하면 그러겄냐고 아 그렁게 여기 있단 말여 니 맘대로 삶아먹든지 고아먹든지 허란 말여 에라 이 순……//그날 은행에 가서 손도장을 눌러 본인확인란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막걸리 한잔 먹고 헌 말은 잊어버려라 너도 알다시피 나도 애상바쳐 죽겄다 니가 어떻게 돈을 좀 애껴 쓰고 무서운 줄 알라고 헌 소링게……


‘말씀하셨습니다’에 초점을 맞춰 한번 더 읽어 보라. 1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은행 대출 문제로 오가는 격한 대화로, 「크로이처 소나타」를 듣는 기분이다. 감정의 고조와 갑갑함에 느낌표와 줄임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2연에서는 “손도장을 눌러 본인확인란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이니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온점이 찍혀 있다. 온점에 호흡이 멈춰 있는 동안 만상이 교차한다. 시인이 쳐 놓은 거미줄에 걸려 가슴이 미어진다. 마음을 정리하고 한참 후에 하시는 아버님의 사랑 말씀, “아침에 막걸리 한잔 먹고 헌 말은 잊어버려라 너도 알다시피 나도 애상바쳐 죽겄다 니가 어떻게 돈을 좀 애껴 쓰고 무서운 줄 알라고 헌 소링게……”
 
시를 읽으며 생각한다. 우리 모두 시를 가까이하며 자연을, 사람을, 생활을 좀더 깊게 성찰해 봤으면 한다. 시는 ‘국밥’보다도 더 따스한 온기로 우리의 차갑고 낮고 허기진 마음을 녹이고 높이고 그래서 충일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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