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학으로서 제주학과 탐라문화연구소의 역할

▲ 김동전(사학과 교수)

왜 제주학인가

지방대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의 하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학문적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주의 정체성을 찾고, 제주 지역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일차적으로 제주에 설립되어 있는 ‘제주대학교’의 몫이다. 서울이나 해외에 있는 대학교에 그 책임과 의무를 떠넘길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지방자치의 본격적인 실시로 각 지역마다 지역의 특성을 발굴하고, 나아가 지역의 미래 발전방향을 이론적ㆍ실천적 논리로 찾고자 하는 지역학이 대두하고 있다. 즉, 강원학, 경기학, 대구경북학, 대전학, 부산학, 서울학, 영남학, 인천학, 전북학, 충북학, 충청학, 호남학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지역적으로 보다 하위 단위인 강릉학, 경주학, 안동학, 안양학, 원주학, 전주학, 춘천학도 거론된다. 제주학도 그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제주학은 다른 지역보다 남다른 지역학으로서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제주의 문화는 누가 보더라도 독특한 문화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소위 문화적으로 볼 때, 제주 지역의 경우 ‘한국 속의 또 다른 한국’이라 불리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둘째, 지역의 범주가 다른 지역은 시대적 변천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제주는 섬이라는 요소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불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제주는 한국의 3,300여 개 섬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 섬일 뿐만 아니라, 크기면에서도 제일 큰 ‘섬의 맏형’이다.
 
셋째, 고대 제주에는 ‘탐라국’이라는 독립된 국가가 천 여 년간 존재하였고, 북방문화와 남방 해양문화가 교차하는 문화적 경계지역에 속한다. 나아가 한ㆍ중ㆍ일의 각 수도를 연결하는 베세토(베이징, 서울, 도쿄) 라인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해양문화의 허브라 할만하다.
 
이러한 이유로 근대학문이 성립되는 20세기 전반부터 일본인 학자뿐만 아니라 국내학자들에 의하여 제주지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제주인들의 삶의 양식과 역사문화 발전상을 이해하고, 제주의 정체성을 규명함으로써 미래 제주사회의 발전을 학문적 관점에서 정리하고 분석하는 ‘제주학’ 성립의 기초를 형성해 온 것이다.
 

▲ 46년 역사의 탐라문화연구소는 『탐라문화』 학술지와 14권의 학술총서, 27권의 자료집 등을 간행해 제주학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탐라문화연구소의 제주학 연구 성과

제주학을 정립시켜 나가기 위한 제주대학교의 노력은 1967년 탐라문화연구소의 전신인 제주대학 부설 ‘제주도문제연구소’ 설립으로 나타났다. 제주 지역의 역사ㆍ문화ㆍ사회에 대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함으로써 제주학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연구소의 명칭은 1975년 6월에 ‘제주도문화연구소’로 개칭되었고, 1976년 6월에는 보다 발전적 차원에서 ‘탐라문화연구소’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립 46년이라는 연구소의 역사는 다른 지역의 대학연구소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그간 연구소의 제주학 연구 성과는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많지만,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제주학 연구의 기초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자료집으로 간행하였다. 『제주설화집성』, 『탐라록』, 『탐라지초본』, 『제주속오군적부』, 『제주대정현덕수리호적중초』 등 27권을 출간하여 제주학 연구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둘째, 제주학 관련 학술 총서로 『제주도 고문서연구』, 『제주도 마을이름연구』, 『제주도 조상신본풀이연구』, 『제주예술의 사회사』, 『일제말기 제주도의 일본군연구』 등 14권을 간행하였다.
 
셋째, 1982년부터 간행하기 시작한 『탐라문화』(1~43호) 학술지가 2008년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지로 선정되었고, 2012년에는 등재지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제주도에서 간행되는 인문사회분야 학술지로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학술지로는 유일한만큼 그 위상은 매우 높다. 제주대학교 소속 교수를 비롯하여 제주학 전문연구자뿐만 아니라 학문후속세대들이 『탐라문화』 학술지를 통해 연구성과를 발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넷째, 부산대 한국학연구소,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등 국내 5개 대학과 교류협정을 체결해 연합학술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한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한국학연구소, 일본 류큐대학 인문사회과학연구과, 야마가타대학, 중국 운남민족대학 운남성민족연구소, 대만 국립대북대학 역사학과 등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여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탐라문화연구소의 역할

탐라문화연구소는 제주도내 유일의 국립대학 연구기관으로서 제주학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이에 탐라문화를 비롯한 제주학 연구기반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 제주대학교에 집적된 인문사회, 자연과학, 해양 분야 등 제주학 연구 전문가와 전체적으로 소통하고 통합할 수 있는 학문융합적 방향을 추구하여야 한다.
 
나아가 제주도내외 제주학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종합적 네트워크 구축에 연구소가 열린 마음으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대학의 궁극적 목표가 ‘연구와 교육’이라는 점에서 볼 때에 제주학 연구를 효율적으로 집적시키고, 제주학 연구 인력 양성에 연구소가 기여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제주대학교의 특성화 분야인 관광, 아열대, 해양 분야 등 제주지역의 문화산업도 탐라문화를 기반으로 글로벌화를 지향해야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미래 창조적 산업발전이 가능해진다.
 
또한 연구소는 자생적 발전이 가능하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학교 당국이 연구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한시적일 수 있다. 따라서 연구소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해양’, ‘태평양’, ‘신화와 굿’, ‘생태인문학’ 등 창의적 연구아젠다를 찾아내어 한국연구재단 중점연구소, 인문한국학 사업단 진입을 목표로 연구소 창립 당시 연구자들이 가졌던 초심의 심정으로 돌아가 의기투합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탐라문화 등 제주학 대중화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제주학입문, 제주의 돌, 제주의 바람, 제주의 여성 등 일반대중서를 발간하고, 제주학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시민강좌의 운영을 통한 연구소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2017년 연구소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50년사 발간 등 실천 과제를 수립하여 실천함으로써 연구소의 획기적인 발전 기회로 삼아야 한다.
 

몇 가지 제언

대학 당국은 연구소의 형평적 지원에서 벗어나 탐라문화연구소의 발전이 곧 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것임을 인식하고 대학의 인문사회분야 특성화연구소로 집중 육성하였으면 한다. 혹시 어렵게 이루어낸 탐라문화연구소의 등재학술지가 선정 취소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연구소의 재도약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은 탐라문화연구소보다 20여 년 늦게 출발하였지만, 총장 직속기관, 원장의 학무회의 참여 등 대학의 특성화전략에 힘입어 2012년 교수신문이 평가한 대학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국립대학 연구소에 전임교수가 배정된 대학은 전남대의 호남학연구원, 부산대의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인문과학연구소 각 1명이다. 연구소를 탐라문화연구원으로 개칭하여 총장 직속기관으로의 전환, 전임교수 배정이 어렵다면 탐라문화연구소 발전기금을 적극 유치하여 기금교수나 연구교수를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라도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제주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는 곧 미래 제주사회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제주학진흥기금 조례’를 제정하여 제주학 진흥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요청한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이 구호로 그쳐서는 안 된다. 지방의 관점에서 제주 지역 주민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보편적 시각의 정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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