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철/소통테이너

제주대학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ㆍ제주의소리와 함께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에 열리는 대학생 아카데미는 오는 11월 26일까지 모두 10개의 강좌와 프레젠테이션 경연대회, 현장체험 등의 다채로운 행사로 마련됐습니다. 학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3백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1996년 SBS 공채 개그맨이 됐다. 신인 개그맨으로 방송생활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듬해 IMF가 터졌다. SBS는 국민 정서를 이유로 모든 코미디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졸지에 백수가 돼 버렸다.
 
대한민국 3개 방송사를 통틀어 공채 개그맨이 1000여명이다. 이 가운데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40여명 정도만 조명을 받는다. 매주 월요일이면 개그 무대에 서고 싶은 개그맨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한다. 진짜 웃기는 개그라도 이를 지켜보는 다른 개그맨들은 금세 표정이 굳는다.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좋은 아이템으로 평가를 받아도 무대에 바로 서기는 어렵다. 담당 PD가 따로 불러 아이디어만 주면 안 되느냐고 제안하기도 한다.
 
개그맨으로선 무명에 가깝지만 아침 방송을 15년째 하고 있다. 주위에서 ‘너는 개그맨이니 개그로 성공해라’고 격려한다. 그래서 무대에 서는 40명의 개그맨 중에 한 명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나 개그맨으로 성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개그맨이 아닌 나만의 새로운 무대를 만들었다. 판을 새롭게 짜기 위해 순서를 바꿨다. 개그맨 오종철이 아니라 오종철이 할 수 있는 개그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했다.
 
개그맨은 남을 웃기는 직업이지만 세상에 웃을 일을 만드는 것 또한 개그맨의 몫이란 걸 깨달았다. 바로 ‘소통테이너’라는 다섯 글자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요즘의 청춘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자격증, 무슨 점수가 필요하다는 생각만 한다. 내가 남들보다 앞설 수 있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은 하지 않고 스펙만 쌓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개그맨으로만 일을 했을 땐 먹고 사는 길은 방송뿐이라고 생각했다. 방송이 없으면 집에서 놀았다. 이제는 하는 일이 달라졌다. ‘소통테이너’로 영역을 넓힌 다음에는 생계유지는 물론 세상에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15년째 한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얼마 전 SBS에서 장기근속상을 받았다. 이 방송에서 A4용지 27장 분량을 생으로 내레이션 한다. 15년을 숙련시켜서 가능한 거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방송국들이 하루아침에 출연자들을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자리를 바꿔버린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캐스팅하면 어떠냐는 생각에 토크쇼를 만들었다. 오종철의 톡쇼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었다. 기업을 찾아다니며 여러 달 밀어붙였다. 달마다 5개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다.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원톱 체제다.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 톱스타들이 각자의 라인을 출연시키곤 했다. 하지만 최근의 방송 프로그램들은 다르다. ‘진짜 사나이’, ‘아빠 어디가’ 등 한 명의 톱스타가 없어도 높은 시청률을 유지한다. 세상이 변했다는 증거다.
 
직장에서 온리 원이 되는 방법은 바로 사장처럼 일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장처럼 일하는 건가요? 진짜 사장처럼 회사의 매출 구조를 일일이 파악하고, 직원 월급 줄 걱정을 하면 사장처럼 일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장이 하는 일의 본질은 아니다. 회사를 ‘나의 회사’라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렇게 태도를 바꾸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회사나 직책을 당신의 이름과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즉, 사장처럼 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걸 것이냐, 걸지 않을 것이냐의 문제이다. ‘A 회사의 수습사원 홍길동’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수습사원의 일만 하면 된다. 하지만 반대로 ‘수습사원 홍길동의 회사 A’라고 생각해보자.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생기고, 자신이 뭔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자리는 직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과 자부심이 결정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방향을 제대로 잡는 싸움을 했으면 좋겠다. ‘넘버 원’의 세계에서는 내가 들어가면 누군가 자리를 내줘야하지만 ‘온리 원’은 내가 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웃을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을 좇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이를 돕는 일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개최하고 있는 ‘모발 나눔 콘서트’의 수익금은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가발을 제작하는 데 쓰이고 있다. 개당 2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나 뜻 있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벌써 48개나 제작했다. 세상에 없던 가치가 만들어졌다. 세상은 여러분들에게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세상에 얼마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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