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14일 오후 제주웰컴센터에서 한국사회의 정의에 대해 강연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지난 14일 오후 5시 제주웰컴센터 1층 웰컴홀에서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표 전 교수는 “국정원 사건은 1950년대 미국 매카시즘처럼 독재의 방법으로 자유를 지키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원세훈 전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들은 자유 수호에 대한 사명감이나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좋다고 해서 모든 수단이 다 허용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는 이념과 체제를 말하며, 중우정치는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를 말한다. 민주주의와 중우정치는 ‘다수결’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중우정치는 선동에 의한 다수결인 반면 민주주의는 시대정신이 반영돼 있고, 표현의 자유에 의한 다수결이다. 헌법 제21조는 ‘언론ㆍ출판의 자유’를, 헌법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표현의 자유’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70위권이다.

또 ‘천안함 프로젝트’라는 영화는 법원의 상영허가가 이뤄졌음에도 극장 상영을 못하고 있다. 선배들이 피 흘리고, 목숨을 바쳐 물려준 민주주의를 짓밟고, 과거로 돌려놓으려는 것은 죄가 된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법무부 청사에는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라고 새겨져 있다. 정의가 흔들리면 곧 사회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사회의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보여준 예이다. 국민들이 정의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그 정치권력은 지속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워터게이트 사건과 르윈스키 스캔들 사건이다. 미국은 적어도 알량한 국가 권력을 위해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실패와 좌절 등 ‘사회적 학습’으로 불의에 무감각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외면하는데 익숙해졌다. 이같은 방관자적 자세를 ‘집단적 질병’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같은 불의에 무감각한 집단적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양심과 용기에 기초한 정의로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초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에게 말을 걸면 다른 학생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한 학생은 엄마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돼”라며 묻는다. 이에 엄마는 자신의 아이도 따돌림을 당할까봐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말라’로 당부한다. 엄마에게 이 말을 들은 학생은 다음날 자신의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린다. 따돌림 당한 아이의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국정원 선거 개입은 엄연히 ‘국정원 게이트’로 반드시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 국정원 사건은 1950년대 미국 매카시즘처럼 독재의 방법으로 자유를 지키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원세훈 전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들은 자유 수호에 대한 사명감이나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좋다고 해서 모든 수단이 다 허용될 수는 없다. 자유를 지키겠다며 무고한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았던 매카시즘 때문에 미국은 자유수호자로서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자유를 지키겠다며 국정원 직원들이 벌인 사이버 심리전 때문에 국민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인터넷상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진실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불의에 대한 사회적 집단 트라우마 증세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권력 유지를 위해 불법을 감춘다면 반칙과 불법이 용납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을 병들게 만드는 일이다.
 
또 이석기 의원에 대해서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내란음모를 알아냈다고 과연 처벌할 수 있을까. 이 의원을 옹호하거나 법적 절차를 언급하기만 해도 종북으로 의심받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국정원은 이미 이석기 의원에 대한 조사를 끝마친 지가 수개월이 넘었는데도 국정원이 선거 개입 등 엄청난 국기문란 혐의를 받는 위기상황에서 터뜨렸다. 그 당시에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그대로 놔 둔 것인가?. 시민의 알권리를 막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환경에 대해 끊임없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비판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의’는 ‘생명’과 마찬가지다. 불의와 불법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진실을 밝히고, 화해로 나가야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국가 시스템은 남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들지 말고 자신들의 의견과 견해를 밝히면 된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정의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방법론적으론 정의로운 말하기, 글쓰기, 추천하기, 가입하기, 후원하기, 소비하기, 투표하기 등이 있다.
 
커다란 눈사태는 작은 눈덩이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눈이 되어 굴러가면 다른 눈들이 붙고 커다란 정의의 눈덩이를 만들 수 있다. 가장 약한 사람이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 어떤 차별도 없이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사회, 공정한 절차가 보장되어 누구나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사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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