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낙진(언론홍보학과 교수)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책을 고를라치면 책에 관한 정보가 너무 넘쳐나는 게 사실이다. SNS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들이 ‘읽어야 할 책’들을 강력추천하는 경우가 많아, 독자들은 언제든지 원하는 책에 대한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시대일수록 책을 고르는 방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쉽지가 않다. 읽어낼 수만 있다면, 명저나 고전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은 낮다. 요즘 들어 범람하긴 하나 ‘권장도서’도 읽을 만하다.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대형서점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라면 더욱 좋다.
 
나는 신문의 주말 판 ‘책’면에 소개된 책을 눈여겨보는 경우가 많다. 요즘 신문사들은 책을 주로 다루는 출판기자들을 따로 두고 있다. 나는 출판 전문기자들의 안목을 믿는 편이다. 최근 재밌게 읽은 서민의 ‘기생충 열전’과 한 줄 한 줄의 의미를 새겨 읽고 있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도 이들의 서평을 본 후 산 책들이다. 
 
100쇄가 넘는 책들도 좋다. 책마다 다르지만, 인쇄기로 1000 ~ 5000부 가량을 처음 찍어내는 공정을 1쇄라 한다. 100쇄라하면 이러한 과정을 100번 거쳤다. 나는 판권에 100쇄가 찍힌 책들을 보면 무조건 사고 본다. 일종의 수집이다. 1970년대 철거민의 애환을 다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00쇄를 대표하는 상징적 소설이 되어 있다.
 
법정의 ‘무소유’도 100쇄를 대표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오천석의 ‘노란손수건’은 1977년 출간된 이래 200쇄를 넘어섰다. 조정래의 10권짜리 ‘태백산맥’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각 권도 통합 200쇄를 넘어선지 꽤 되었다. 번역본으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200쇄에 올라 있다. 
 
저자나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을 고르는 것도 유익한 방법이다. 나에게는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이에 해당한다. 이 책은 ‘접시꽃 당신’ 도종환이 어느 글에선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가 보내준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며 추천한 적이 있다.
 
도종환은 이 책을 보고 나서 예술에 대한 개명을 한 것 같다고 하였다. 나에게도 이 책이 미술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만들어 주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매 해 이 책을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는 나의 애장도서 1번이다.
 
출판사 이름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특정 출판사의 권위와 전통을 믿고 책을 고르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출판사들이 많다. 민음사, 창작과 비평사, 문학과 지성사, 한길사, 열화당, 범우사 등에서 나온 책들은 어느 것이든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시는 창작과 비평사, 문학 및 문화이론은 문학과 지성사, 인문학은 민음사, 사회과학은 한길사, 예술은 열화당, 문고는 범우사 책들을 선호한다.
 
더 나아가 이들 출판사와 대학 중 어느 곳이 더 무게가 나갈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일본 사람에게서 이와나미(岩波) 출판사의 문고본과 동경대를 바꾸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코 허튼 이야기가 아니다. 좋은 출판사는 좋은 대학 이상으로 ‘지식사회’에 대한 기여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좋은 책 고르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하여 보았다.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고도의 문화적 행위에 해당한다. 그 과정에 개인사, 독서이력, 성과를 위한 필요, 유행과 구별하기 힘든 취향 그리고 미디어를 포함한 사회적 ‘강권’ 등 제반 요소들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 선택은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개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책의 선택은 좋은 스승을, 좋은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소중한 행위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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