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식물환경자원전공 교수)

인간이 갖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는 궁극적으로 죽음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잠시 자신이 소나무라고 생각해보자. 정말로 감정의 이입이 되었다면, 지금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르르 떨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에이즈는 인간의 탐욕이 낳은 21세기 재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에이즈의 공포에 떨고 있는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치사율이 100%라는 에이즈를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치사율이 0.1%인 신종플루나, 치사율이 3~4%인 사스(SARS)에 오히려 더 공포를 느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자기(또는 사람)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에이즈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얼마든지 감염을 피할 수 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병원균의 매개체는 인간 자신이다.
 
유럽에서 1347년(14세기) 처음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 유럽인구의 30%에 해당되는 2500만명이 희생되었다.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몰랐다. 한참 후에야 쥐벼룩이 흑사병의 원인이 되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를 매개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외부와 모든 접촉을 끊고, 문을 꼭꼭 걸어 잠가도 흑사병의 침입을 방지하지 못했다. 몸속에 페스트균을 보유한 벼룩을 태우고 쥐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약 1 mm 길이의 실같이 생긴 소나무재선충(Bursaphelenchus xylophilus)이 원인이 된다. 소나무에 침입한 선충은 급속도로 증식하여 나무의 물관을 막아버린다. 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당해년도 80%, 다음해 나머지 20%가 고사한다. 소나무재선충은 스스로 이동능력이 없다. 전파되려면 반드시 흑사병의 쥐-벼룩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딱정벌레목에 속한 솔수염하늘소라고 하는 곤충이 매개체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치사율이 100%라는 점은 에이즈와 같다. 하지만, 감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과 가공할 만한 빠른 전파능력은 흑사병의 속성에 더 가깝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솔수염하늘소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초기 박멸에 실패하면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왜 그것을 간과(看過)했을까? 솔수염하늘소가 나오지 못하도록 고사된 소나무의 벌목과 훈증처리, 내년에는 대대적인 항공방제 살충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1905년 일본에서 처음 보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발생되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화물의 포장재로 쓰인 소나무 목재 속에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솔수염하늘소가 들어 있었다. 제주에서 첫 발생은 2004년 오등동에서 발견되었다. 육지에서 드려온 건축자재용 목재를 통하여 솔수염하늘소가 침입한 것이다.
 
이제 제주도에서도 어디서나 빨갛게 말라 죽어가는 소나무들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천연경관이 최고의 자산인 제주도에 가슴이 아픈 일이다. 일본에서는 642백만 ha, 중국에서는 700백만 ha 면적의 소나무가 피해를 받았다. 일본 구마모토에서는 소나무가 모두 사라졌다. 제주도 소나무 5만 그루가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되어 고사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내년 봄까지는 15만 그루가 고사될 것이라고도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소나무가 사라진 제주의 산과 들을 생각해보자. 그 모습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공포스러운가? 가만히 눈을 감고 현재 자신의 모습에 미래의 나를 겹쳐서 보자. 행복한가? 공포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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