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학 연구와 한국문집

▲ 정창원(사학과 교수)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중국의 한자(漢字)를 도입하여 생활하였고, 정치ㆍ경제ㆍ문화ㆍ사회 등 제 분야의 기록을 한자로 남겼다. 그 결과 전통시대 기록된 개인적 문집(文集)도 한문(漢文) 문장으로 남기게 되었다. 한문으로 기록해 놓은 조상들의 문집은 개인의 기록이면서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학적ㆍ역사학적ㆍ문헌학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담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문집은 한국인의 사회ㆍ생활ㆍ역사ㆍ문학ㆍ철학 등의 의식이 잘 드러난 생생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역사는 지나간 일을 기록한 것 그 자체이다. 이러한 기록물에는 다양한 자료가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같은 방대한 자료는 국가가 기록한 것으로서 역사의 근간이 되는 1차 사료이다. 이러한 자료의 방대성이나 역사적 가치는 이 기록물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사실 만으로도 충분하게 입증된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관찬사료(官撰史料)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관찬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공정성을 가지고 서술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얼마만큼 사실적으로, 또한 공정하게 기록되어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늘 있어 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해 주는 자료들이 이른바 2차 사료들인 개인 문집들이다.
 
▲ 2012년 6월 제주대학교는 홍콩시티대학교(City University of Hong Kong)와 미국의 UC Berkeley대학과 공동으로 동아시아 문화교류 연구에 착수했다.
역사에서 2차 사료의 중요성은 익히 알려져 왔다. 국가 통치 과정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거나 혁명을 일으킬 경우 그 주도세력들이 역사를 자신들의 입장에 맞추어 유리하게 서술해 온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물을 있는 그대로 믿고 해석하는 것은 자칫 왜곡된 역사인식을 불러 올 수 있다. 따라서 2차 사료의 존재는 그러한 역사적 왜곡의 오류를 최소화하고, 보다 정확한 사실의 기록과 해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바로 이러한 2차 사료의 핵심에 있는 것이 전근대(前近代)시기의 경우 개인 문집이라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유학적 사유체계를 가지고 생활한 사람들이 살던 시대이다. 한자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기록하였고, 국가 위정자로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기록들을 문자로 남겨왔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는 후대의 자손들에 의해 활자화됨으로써 오늘날 많은 문집들이 전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문집은 經ㆍ史ㆍ子의 경우처럼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체계를 잡아 쓴 책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한 글을 모은 것을 지칭한다. 한 개인의 저작물을 주제별로 엮은 단행본이라기보다 저작물을 모두 망라한 개인전집과 같다. 문집은 다양한 글모음이기 때문에 經ㆍ史ㆍ子에 비해 주제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러나 그 잡다함이 한 개인의 인생관과 사상을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문집은 대체로 본인이 죽고 난 뒤 후손들이 족친(族親)이나 향당 유림(儒林)의 의견을 듣고 경비를 모아 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문집의 체재는 특별한 격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문체별로 편집되었다. 문집에 실린 내용은 저자가 평생 어떤 인생관과 학문관, 그리고 시국관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개인 연구와 사상사 연구 및 교류사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료이다. 더욱이 이러한 문집을 남긴 사람들의 대부분은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 위정자들이나 위대한 사상가들, 그리고 문학적 소질을 가지고 있는 식자 계층들이다.
 
예를 들면 조선 건국의 핵심적 역할을 한 삼봉 정도전이나 조선과 중국의 외교 업무를 도맡아 진행한 정인지, 서거정, 그리고 조선 중기 개혁정치의 중심에 서 있던 정암 조광조, 한문학의 미려한 문장을 남긴 이식의 문집들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은 문집은 그 당시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문집의 조사와 영인 작업, 나아가 번역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한국학의 특정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의 제반 영역에 대한 풍부한 사실을 전하면서 보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사(當代史) 연구와 한국학의 대중화, 나아가 동아시아학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문집자료의 수집과 색인작업을 거쳐 지금까지 나온 관련서적으로는 윤남한의 『한국문집기사종람유별색인-잡저기설류기사색인(韓國文集記事綜覽類別索引-雜著記說類記事索引)』(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4ㆍ6배판, 2373면)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집들을 종합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한 사업은 아직 충분하지 못한 실정이다. 위의 책조차도 전 10권으로 간행되어야 할 『한국문집기사종람유별색인(韓國文集記事綜覽類別索引)』의 첫 책에 지나지 않았고, 후속작업은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한국문집기사종람유별색인(韓國文集記事綜覽類別索引)』의 작업과정 결과 역대한국인문집 5,000여 종에 대한 기초조사, 목록조사가 이루어진 채록카드는 7만4천매가 완성되었고, 그에 대한 교정 작업은 3만7천매를 남겨두고 있다.
 
이들 카드는 故 윤남한 교수의 제자이자 색인의 공편자(共編者)였던 권중달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가, 다시 권중달 교수의 제자인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제주대학교 사학과로 이관되어 후속 연구 및 정리 작업들을 준비 중에 있다. 권중달 교수에 의하면 이 작업의 진행을 위해서는 현대화된 장비와 충분한 연구비를 가지고도 약 10여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최근 동아시아 연구에 주력하는 동아시아 각국의 대학 및 연구기관들은 동아시아학 연구를 위한 주요 자료로써 한국에서 출간되어진 한적(漢籍)자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일부 대학의 경우 이들 자료의 정리 작업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홍콩시티대학교(City University of Hong Kong) 와 우리 제주대학교 및 미국의 UC Berkeley 대학 역시 『한국역대문집총서』와 『연행록전집』을 활용한 동아시아 문화교류 연구에 착수하였다.
 
이들 대학들은 『한국역대문집총서』의 색인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였고, 그 결과물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연구기관에 제공되기 시작하여 언론 및 학계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방대한 국제학술프로젝트사업에 대해서는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Library Newsletter, Issue No. 13,  『한라일보』, 2010년 5월 15일, ‘제주대 박물관 국제학술 교류’ 기사를 비롯한 중화권 주요 언론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매체의 소개기사를 통해 관련 사실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학 문집의 목록 색인은 조상들의 사상과 정신적 유산을 전수할 뿐만 아니라 문화 민족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조상들의 문집을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며 그 가치를 자리 매김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이며, 그 결과물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자산이 될 것이다.
 
6,000종이 넘는 우리 조상들의 문집을 이제 드러내 알릴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업은 어느 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다. 전국적으로 분포된 문집의 수집만 해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 문집 하나하나의 표제를 찾고 이를 입력하는데도 막대한 인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학문집의 정리는 동아시아학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작업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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