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희(중어중문학과 교수)

지난 24일 내가 탔던 제주행 비행기가 광주로 회항했다. 제주공항의 강풍 때문에 착륙이 힘들다는 이유로. 비행기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제때에 이뤄지지 않은 항공사의 안내로 여러 추측이 난무해지면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광주로 회항했던 비행기는 급유 후 다시 제주로 갈 것인가, 광주 공항에서 내릴 것인가를 한동안 결정하지 못했고, 제주 공항의 기상으로 결국 당일 제주행은 무산되었다.
 
문제는 제주로 가는 것이 무산된 후 항공사의 대처 태도였다. 전체 안내 방송도 없었다. 일일이 한 사람씩 해당 항공사 안내 창구에 서서 물어보고 환불과 다음 날 재탑승 수속을 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관련 담당자가 나와서 진심어린 말로 상황을 수습하면서, 정확한 안내를 하고 신속한 수속을 해줬으면 이 사람들이 지금의 이런 반응이었을까. 결국 굉장한 잡음이 있었고, 아쉬움을 뒤로 하면서 광주 공항을 나섰다. 해당 항공사의 어느 직원 한 명도 성난 고객에게 마음으로 감동을 주지 못했다.
 
몇 해 전 이야기다. 결혼을 앞 둔 여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다음 날 새벽에 인천에서 출국했어야 했기 때문에 하루 전날 서울에 사는 동생 집에 가 계셔야 했다. 그런데 엄마가 탈 비행기가 지연 출발되고, 항공사 직원의 안내 실수로 결국 엄마는 당신이 타셔야 할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개인적인 일 때문에 직접 공항으로 나갈 수 없었던 나는 해당 항공사로 항의 전화를 했다. 그러나 엄마의 일로 통화를 하게 된 담당 항공사의 국장이라는 사람(이 일로 해당 항공사의 여러 사람과 통화를 했다. 결국 제일 마지막에 통화하게 된 서울 본사의 최고 담당자급)은 굉장히 미안해하는 어투로 정중히 사과를 했고 그 목소리에 감동받고 이미 싸울 기세가 없어졌던 나는 엄마의 다음 날 출국에 차질이 없는 항공편 배정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상대방에 대한 사과가 진심을 담았을 때 어떻게든 전달되고 느껴진다는 것을.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사과에 대한 태도를 배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말들을 한다. “너 정말 아프겠다.”, “난 널 이해한다.”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해봤다하더라도 그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겠는가. ‘처지를 바꿔 생각해본다(易地思之)’고 하더라도 절대 다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하물며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떻겠는가!
 
나와는 ‘틀린’ 당신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당신을 인정해 주면 어떨까. 이 말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지 나에게는 아직도 이 화두가 늘 숙제이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과 미움을 받는 사람은 누가 더 손해일까? 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당연히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다. 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집중하면서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그 미워하는 사람과 관련된 어떤 일이 들리기만 해도 다시 흥분 되어서 평소의 평정심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본인이 황당한 일을 당하면 생각한다. 나도 그때 그 사람한테 그렇게 한 것이 그 사람이 이렇게 황당한 마음이었겠구나.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 당사자에게 전화한다. 그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나도 당해보니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살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나는 남에게 절대로 한 번도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이미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내가 모를 뿐이다. 아니면 모르고 싶을 뿐이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안다. 누가 내게 상처를 주었는지.
 
날씨가 꽤 추워졌다. 오늘쯤은 내가 나의 실수로 아니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없었나 생각해보고, 오랜만에 전화 걸어 뜬금없는 안부라도 물어보면 어떨까?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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