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해외봉사단 베트남 해외봉사캠프 취재기 < 2 >

제주대학교 아라해외봉사단(단장 김성엽)은 2월 15일부터 8일간 베트남 꽝찌성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둘째 날부터 봉사단은 의료봉사팀과 교육봉사팀으로 나뉘어 꽝찌성 내 주민들을 도왔다. 의료봉사팀은 꽝찌성의 ‘여하이’ 초등학교에 의료시설을 설치해 봉사를 시작했다. 베트남 주민들과 함께 웃고 울며 마음을 공유하고 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 주>

▲ 안혜림(의학전문대학원 1) 봉사단원이 호아마이 유치원생에게 불소도포를 해주고 있다
 
“Cam on, doctor!”
 
많은 아이들이 침대에서 잠투정을 하고 있을 이른 아침,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온 한 소녀가 조그맣게 인사를 건넸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약을 타러 왔다고 그녀는 말했다. 약봉지를 건네받고 의사에게 감사하다며 씩 웃어 보이는 소녀. 약봉지를 신나게 흔들면서 돌아가는 소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늙은 아버지를 업고 먼 길을 찾아온 한 청년과 자신의 몸이 더 만신창이인데도 아이를 먼저 치료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그들을 바라보는 봉사단의 눈가 또한 촉촉이 젖어갔다.
 
지속된 전쟁은 베트남의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들의 마음은 남아있었다. 고엽제의 피해가 가시기도 전에 태풍으로 또 한 번 아픔을 겪은 베트남 꽝찌성. 봉사단은 지난 2월 16일 꽝찌성의 ‘여린현’ 초등학교에서 한줄기 사랑을 싹틔웠다.
 
네 번째 봉사를 앞둔 봉사단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준비와 사전 조사를 통해 베트남 꽝찌성을 찾았다. 최대한 베트남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의약품 위주로 약품 리스트를 작성하고, 정부가 허용한 필수 의약품은 한국에서 대량으로 준비를 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봉사단이 ‘여린현’ 초등학교에 도착하자 ‘Xin Chao!’하고 우렁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봉사단을 반갑게 맞이하고자 한 교장선생님의 작은 배려였다.
 
아이들은 한없이 순수했다. 봉사단이 학교에 의료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놀랍게도 이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환자들이 앉아서 기다릴 의자를 가져왔다.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먹을 간식을 건네주면서 방긋 웃기도 했다. 봉사단은 아이들과 하나가 돼서 진료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교실이 외과,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와 약국까지 마련된 제법 훌륭한 병원이 됐다.
 
놀이터 앞마당에 설치한 접수계에 커다란 종을 설치함과 동시에 봉사단의 여정이 시작됐다. “땡, 땡, 땡”,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민들에게 봉사단의 사랑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 강현식(소아청소년과)교수가 여하이 마을 지역의 한 아이를 진찰하고 있다

◇환자의 접수부터 진찰, 치료, 처방까지

접수계에서는 정원무 KOICA 단원을 포함해 6명의 학생들이 수많은 베트남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픈 사람들은 많은데, 학교는 너무나 좁다보니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환자들이 들어섰다. 김동전 메디피스 간사는 큰 소리로 대기환자들의 번호를 불렀고, 이따금씩 장난을 치는 어린 학생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의전원 학생들은 맥박을 재고, 그들의 아픈 곳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환자들을 열심히 상대했다.
 
장석원(의학전문대학원 4) 씨는 “접수를 통해 환자들이 어떤 병원을 찾을지 설명해야 하는데 환자들이 자신의 아픈 곳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접수를 마치고 나면, 환자들은 친절하게 베트남어로 적힌 병원의 표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의 안내를 통해 병원으로 들어서면 교수와 베트남 병원의 의사, 다낭대학교 통역학생이 함께 병원을 지키고 있다. 베트남의 법은 외국의 의사가 약 처방과 진료를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에 봉사단은 현지 의사의 도움과 다낭대학교의 한국어과 학생의 통역을 통해 의료봉사를 진행했다.
 
외과에서는 이창현(외과) 교수가 환자의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며 진찰을 하고 있었다. 30년 동안이나 영문 모를 고통에 잠을 편하게 이루지 못했다는 기에우 탠 타오(57세)씨는 이교수의 초음파검진기를 통한 진료를 받았다. 약 처방과 함께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그는 “그동안 허리가 너무 아파서 농사를 마음 껏 하지 못했는데 당장이라도 일하러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어 봉사단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옆 교실에 마련된 내과에서는 한상훈(내과) 교수가 한 노인의 설명을 한참 듣고 있었다. 한교수는 의사가 되기 전 KOICA 단원 등 여러 활동을 경험했었다고 한다. 통역 도움 없이도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가자 노인은 안심한 듯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환자와 의사간의 소통을 통해 생기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보다 주민들의 의식개선 필요

한상훈 교수는 “베트남은 아직도 원시적인 미신이 많이 남아있어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메디피스나 NGO등에서 한 마을에 우물을 설치해 준 뒤 그 물을 마시라고 하면 주민들이 거부한다. 그러고는 촌장이 소위 ‘신성한 물’이라 칭하는 흙탕물을 마음 놓고 마시는데 결국 이것이 대장염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며 “의료 봉사를 통해 환자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단순히 진찰을 보고 의약품을 나눠주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전체적인 의식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어느 병원이나 아픈 환자들이 북적거리지만, 그 중에서도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병원이 눈에 띄었다. 한국의 병원에서 아이들이 의사선생님을 무서워하듯, 강현식(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청진기를 갖다 대자 아기가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걱정스럽게 아기를 쳐다보며 울음을 달랬다. 문득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병원의 모습은 만국 공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교수는 베트남의 많은 아이들이 겪는 증상은 주로 영양섭취 부족과 호흡질환에서 온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호흡질환을 겪는 이유는 급속도로 증가한 베트남의 오토바이 때문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거리를 둘러보면 중형차나 대형차를 찾기가 무척 힘들다. 국민들의 80~90%가 이동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사용하며 한 가정에 한 대 이상의 오토바이는 필수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가 장을 보러 갈 때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아이에게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현지 의사가 말하길, 최근에는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권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오토바이에 익숙해진 베트남 주민들이 쉽게 습관을 고치지 못해 문제라고 말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박철민(산부인과) 교수의 지도아래 나이 든 부인과 젊은 처녀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트남 처녀들이 마음을 놓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접수원과 상담원을 여자로 구성한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베트남에는 아직 피임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지 않아 많은 처녀들이 성병의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한다. 봉사팀은 어린 처녀들에게는 짧지만 중요한 내용이 담긴 성교육을 겸해 진료를 시행했다.

◇어린이집 아이들을 위한 불소도포

각자의 병원에서 진료가 한창일 때, 박진아(의학전문대학원 2), 안혜림(의학전문대학원 1) 두 학생은 교육봉사팀이 있는 호아마이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불소도포를 하러 떠났다.
 
그녀들이 불소도포를 하기 위해 교실로 찾아가자 달콤한 낮잠을 자고 막 일어난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박진아씨가 불소도포 방법을 가르쳐주자 아이들은 신나서 따라한다. 하지만 불소약을 입에 넣자 뱉는 아이와 약을 삼키고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까지, 그녀들은 귀엽기만한 아이들에게 한참을 시달린 뒤 땀을 훔친다.
 
모든 처방을 받고 한결 가벼워진 표정의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강영준(응급의학과) 교수가 있는 약국이다. 약국은 환자들에게 약을 언제 먹어야 하는지, 증상이 반복되면 큰 병원을 찾으라는 등 중요한 전달사항이 많다. 통역을 돕는 학생들이 더욱 심혈을 기울여 환자들에게 두 세 번 씩 약사의 말을 전달해주자 환자들은 감사의 표시를 한다.
 
봉사단에게 큰 웃음을 준 환자도 있었다. 구충제를 받은 레 빈 프엉 미(15세)가 자기 뱃속에 수많은 벌레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약을 수십 개 받아가겠다고 울음을 터뜨려 모두를 당황시켰다. 강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울음을 그친 아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자 봉사단 모두가 씩 웃었다.
 
의료봉사팀의 마지막 봉사날, 봉사팀은 주민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을 받았다. 그동안 자신들을 위해 너무나 고생 많았다며 갖가지 음식과 선물을 권했다. 봉사단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큰 감동을 받고 살짝 눈물을 훔쳤다. 누군가에겐 보잘 것 없는 약 몇 봉지일 뿐이겠지만, 봉사단과 베트남 주민들은 서로 사랑을 나눠가졌다. 봉사단은 자신들이 행한 봉사가 이들에게 작게나마 행복을 전해 줬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뿌듯한 마음을 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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