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찬(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래 함께 근무하며 지켜보아온 존경하는 선배 교수의 책을 평하게 되었다. 도덕적 반칙이 아닐까. 그러나 이 책은 충분히 동료 교수의 평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강단에 선 지 30년이 경과되는 시점에 그 간의 연구 논문을 선별하여 자신의 문제의식과 학문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세상에 밝히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자의 삶과 텍스트 양쪽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저작자의 삶도, 텍스트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함께 경험을 공유해 온 동료 교수가 비평에 유리한 점도 있다.
 
책 제목이 매우 딱딱하고 평범하다. ‘국제법 특강’. 지금과 같은 시대에 왜 이런 책 제목을?  이런 딱딱한 책 제목을 붙인 이유가 나름 이해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 학문세계에는 학문의 형식적 엄격성을 유지하려는 흐름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 시사적 문제에 초점을 둔 저널리스틱한 접근은 학문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강하다. ‘국제법 특강’이라는 책 제목의 선택에는 그런 생각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문제의식은 ‘국제법의 쟁점과 과제’라는 부제에서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떤 쟁점과 어떤 과제인가? 저자는 이미 2011년 그 간에 발표한 영문 논문들을 편집하여 ‘Global Governance and International Law’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는 우리말 논문들을 편집한 것이다. 당연히 이 책은 우리나라 독자들을 향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국제법의 쟁점과 과제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국제법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국민들이, 지식인들이, 법률가들이 정말로 국제법을 믿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낙관적으로 답할 수가 없다. 두 가지 문제가 겹쳐 있는데, 우선은 법 인식의 문제이고 다음은 국제법 인식의 문제이다. 거칠게 얘기해서 법 또는 법이념과 현실이 괴리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더구나 국제법이 현실로 인식되기는 힘든 법이다.
 
저자 스스로 1983년 9월 국제법 강의를 시작할 당시 국제법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매우 적었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법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이제 충분해졌을까. 단언컨대 지금 우리나라에서 국제법은 생활화되어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를 외교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국제화되지 못하는 한, 국제법을 현실로 인식하기는 힘들 것이다.
 
대 이라크전에 있어서 미국의 무력사용에 대한 적법성 논의(제10장), 재일한국인의 지방참정권 고찰(제15장), 수용국과 국제기업간의 투자분쟁 문제(제16장), 편의치적과 국제선박등록특구제도(제17장), 제주해역의 해로보호와 동북아 해양협력(제18장) 등등 구체적이고 시사적인 주제들도 다루어지고 있다. 그래도 이 책의 기본적 접근방식은 실무적, 현장적이기보다는 이론적이다. 국제법이 아직 생활화되지 못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불가피한 접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의미는 국제법의 쟁점이라기보다는 국제법의 과제라는 쪽에 더 큰 무게가 실려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결국 ‘국제적법치주의의 확립’이라는 과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원래는 ‘국제적 법치주의와 국제법’이라는 제목을 택하려 했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국제화가 비약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경제력도 이제 만만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요구도 증대되고 있다. 법치주의 인식을 국제적 수준으로 확장하지 않고 우리가 외교의 주체로 설 수는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주를 그러한 외교의 주체적 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젊음을 국제법 연구에 바친 성실한 학자가 말하는 국제적법치주의 확립의 호소는 충분히 귀 기울여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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