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양식: 학습

인류진화 과정에서 직립보행과 그로 인한 손의 자유로와짐은 현세의 인류 생활형태를 갖추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손의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깊어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게 되며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좀 더 편리한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활동에서 손만이 그러한 역할을 할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체를 사용하는 능력, 팔을 사용하는 섬세함, 필요에 따라 신체를 적절히 움직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진화되어 왔기 때문에, 손의 사용은 그 중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다면, 인간 진화의 원동력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본인은 ‘의식’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정신세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뇌로부터, 뇌 혼자로부터, 우리의 기쁨, 즐거움, 웃음, 농담과 슬픔, 고통, 탄식, 눈물이 나타난다. 뇌를 통해 우리는 생각하고, 보고, 듣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구별하고,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가리고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을 구별한다’는 말은 기원전 5세기경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내용이다. 뇌의 의식세계가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좀 더 좋은 것을 추구하고 발전되어 왔다. 직립보행이 나무 위의 열매를 수집하는데 더 좋으며, 그로 인해 손의 사용이 가능하니 도구의 사용이 쉬웠을 것이다.
 
결국, 뇌의 학습과 생각, 즉 ‘의식의 형성’이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수십만년 동안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뇌는 그 어떤 동물들보다도 뛰어난 구조체를 갖게 된다. 100억개 이상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 성능이 뛰어남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인간의 뇌가 태어날때부터 완전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 우선 그것에 대한 답은 ‘아니요’라고 미리 제시하고자 한다. 유전적 원인이나 병적 손상을 제외하고 극히 정상적으로 건강한 뇌를 갖고 태어난 어린 아이를 생각해보자. 태어나자 마자 감각이 살아나고, 빛과 소리에 반응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이러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여 뇌가 완전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태어난 직후부터, 시각, 청각이 없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사물에 대한 형태인지능력이 확실히 떨어지며,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이는 태어난 후 보고 듣고 학습해가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있는 ‘완전체의 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뇌를 인지과학의 중심에 둠으로써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각종 정신과적 질환이 귀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뇌의 화학적 균형이 깨어져서 나타난다는 것을 현대 의학에서는 설명하고 있으며, 간질발작과 같은 악마의 질환(성경에서 언급되는)이 신경세포들의 비정상적 집단발화와 관련이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을 기반으로 약물치료가 가능해졌다.
 
뇌가 학습을 통해 완전체가 되어간다는 것은 기본적인 뇌의 작동원리만을 알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뇌가 생성되고 나며, 지속적인 감각 정보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감각은 위에서 언급된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촉각, 통각, 미각, 후각 등 다양하고 복잡하게 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자극이 되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각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게 된다. 특정 감각에 대한 경험은 생각과 행동을 유발하게 되며, 얼굴의 표정을 만들어내고, 몸의 움직임과 언어적 표현 및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면서 자아가 형성되고, 자아를 기반으로 새로운 학습을 추구하는 욕구가 발생하며, 이를 반복함으로써 ‘학습하는 뇌’를 갖추어가게 된다.
 
인류가 진화해가는 과정에서 보다 높은 지적 수준을 갖게 되는 것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보 접근성이 수월해지면서 보다 많은 경험과 학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학습을 기반으로 진화하는 구조체이며, 그 가능성은 무한대라 할 수 있다.
 
뇌가 의식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뇌조영술이 보편화된 최근 20~30년 사이이다. 그 중에서 기능적 뇌조영술 (functional MRI)은 인간의 생각, 행동 그리고 학습이 일어나는 영역을 뇌의 혈류 흐름을 추적함으로써 알아낸다.
 
뇌조영술을 이용한 재미있는 연구를 하나 소개하자면, 바로 ‘거울뉴런체계 (mirror neuron system, Rizzolatti외, 1996년)’일 것이다. 이것은 타인의 행동을 통해 우리의 뇌가 모방을 하고, 학습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상대방의 행동에 유달리 관심이 많으며, 단순히 그 행동을 따라함 뿐만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의도를 생각하고, 그 행동에 대한 결과를 예측함으로써, 자신에게도 유리한지 유리하지 않은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 행동에 대한 기억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사회모방학습’ 체계가 구축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은 자폐증을 갖는 환자들에서의 비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뇌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울뉴런체계가 뇌의 모든 학습능력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에 대한 학습과 표출에 대해서는 편도핵 (amygdala)과 같은 뇌 영역이 관여하고 있으며, 지속적 학습과 훈련을 통한 인위적 기억형성을 담당하는 영역에는 해마 (hippocampus)와 같은 영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전전두엽 피질 (prefrontal cortex)은 상황판단과 더불어 행동표출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을 유도해내는 흐름도 (flowchart)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역별 기능들을 유추해 볼때, 뇌가 하나의 ‘완전체’가 되어가기 위해서는 ‘효율적 유기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뇌의 학습 능력을 효율적으로 증가시키는데 가장 좋은 수단은 ‘목적’이라는 것이다. 복잡한 체스판을 전문가 집단과 초보자 집단에게 보여주었을때 체스판의 말들 위치를 잘 기억해내는 사람들은 전문가 집단이다. 언뜻보면 당연할 것 같으나, 실험을 통해 그 현상을 연구한 결과, 전문가 집단은 복잡한 체스판을 보는 순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목표 의식’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체스판 기억이 가능하며, 반대로 목표 의식이 형성되지 않으면 전문가 집단도 초보자와 같은 수준의 기억력만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뇌의 의식수준 형성 단계에서 목표의식 형성이 전체 학습능력 향상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이 여타동물들과 다른 점은 분명히 ‘생각과 표현 그리고 지식 형성에 있어서의 생물학적 수준이 월등히 높다’라는 것이다. 높은 수준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생물학적 진화과정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사회적 구조형성, 인간관계의 유지, 체계적 교육과정 등이 일조했다는 것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주변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든 그렇지 않든간에 우리의 뇌는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학습을 먹으며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부딪혀 경험할 수 있는 젊은 나이야말로 가장 풍성하게 뇌를 살찌울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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