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승은(행정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도 벌써한 달이 지났다. 커다란 여객선이 기울어져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고, 탑승자의 대부분이 구조되었다던 처음 발표가 번복되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도 모두 가슴을 졸이며 구조소식을 기다리게 됐다. 희생자의 다수가 어린 고등학생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 속에서도 가라앉은 배 안에서 구출해 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데서 우리 모두가 받은 충격은 실로 컸다.
 
언론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를 경쟁적으로 쏟아냈고, 티비를 켤 수도, 끌 수도 없는 불안한 날들이 계속됐다.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한, 참으로 복잡한 감정속에 지난 시간들이었다. 혹자는 허둥거리는 정부의 부실한 대응체계를 비난했고, 혹자는 무책임하게 승객들을 버리고 도주한 승무원들을 비난했고, 또 혹자는 어린 생명들을 구해주지 않은 신을 야속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것이 한 가지 원인 때문이 아니라 일일이 손꼽기도 버거운, 총체적 부실 속에 발생한 일임을 알았고, 오히려 그동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기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매일 매일 우리는 일상에서 기적을 경험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겪으며 한 기억을 떠올렸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인적이 드문 주말의 학교는 조용하게 책을 읽기에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담배 연기 등에 반응해서 오작동을 하는 일이 있었던 터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금새 그치리라 생각했던 경보기가 쉬지 않고 오 분 이상을 울려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연구실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로 다시 돌아와 학교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렇습니까? 알았습니다.’였다. 머뭇거리며 다시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밖으로 나갈까요?’ ‘가 볼 테니까 계셔보세요’ 십 분쯤 경과하고 나자 경보기소리가 그쳤다. 여느 때처럼 자연히 멈춘 것인지, 당직자가 와서 어떤 조치를 하고 간 것인지,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아 알 수 없었다. 불안해진 마음에 연구실을 나와야 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까지 우리 대학의 재난대비 매뉴얼을 본 적이 없으며 안전교육 또한 받아본 적이 없다. 짐작컨대 무엇인가 매뉴얼이 있기는 할 것이고, 소방장비를 비롯한 안전시설이 어딘가 건물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수업 중 갑자기 위험이 발생했을 때 나 또한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대피시키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 있을 때, 나의 연구실 문에는 건물 층의 소화기와 각종 장비의 위치와 대피경로 안내가 붙여져 있었고 연구실에는 재해대비 매뉴얼이 비치되어 있었다. 아파트 키를 받을 때 관리인이 제일 먼저 알려준 것은 비상시 대피할 사다리를 내리는 법이었다. 매달 한 번씩 가스감지기와 스프링쿨러를 점검하기 위해 부재중에는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가도 좋다는 사인을 해야 했다.
 우리 대학도 재난대비 안전매뉴얼을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교직원과 학생들이 주지하도록 하면 어떨까, 그리고 강의실과 연구실에는 재난발생시에 어디로 신고할지, 어디로 대피할지 등의 간단한 행동요령을 붙여두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에 이미 130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으며 수천 명의 국민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진도를 찾았다.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것을 내 일처럼 함께 공감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분노와 슬픔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꽃다운 학생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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