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천(독일학과 교수)
일본의 과거청산 문제는 현재 동북아시아의 평화공존을 방해하고 있는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퇴행적 행보는 종종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1944~)의 소설 『더 리더』(1995)를 소개하고자 한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출판된 지 5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이미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1959) 및 파트릭 쥐스킨트의 『향수』(1985)와 더불어 2차대전 이후 현대 독일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소설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2008년 영화로 소개되어 호평을 받으면서 소설이 또 다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2010년 현재 40여 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미하엘 베르크는 현재 50세의 법제사 연구학자이자 작가이다. 그는 사법관 시보 기간이 끝나자 법제사 연구학자의 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부인과 이혼하였으며, 이혼 후에도 다른 여성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니까 미하엘이 (법의) 역사를 연구하게 된 이유와 싱글로 살고 있는 이유를 추적하는 것이 이 소설에 대한 바른 독법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여는 첫 단추로 열다섯이던 해에 만났던 서른여섯 살의 첫사랑 한나 슈미츠를 선택한다. 어린 시절 21세 연상의 전차차장을 사랑한 이후 그녀로 인해 어떻게 인생이 펼쳐져왔는지 회고하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소설 『더 리더』
 
15세 때인 1958년 10월 어느 날 황달에 걸린 미하엘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토를 한다. 이 장면을 목격한 한나는 미하엘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손과 얼굴을 씻겨주고 집에까지 데려다준다. 약 3개월 후 미하엘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려고 하자 그녀는 외출 할 일이 있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는 현관에 서서 기다리는 중 부엌에서 옷을 갈아입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스타킹을 신는 그녀의 모습에 매료되어 눈을 뗄 수 없었지만, 그것은 성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태도와 몸놀림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그녀의 태도와 몸놀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히려 그녀는 그녀의 몸의 안쪽으로 되돌아가, 그녀의 몸을 몸 자체에게 그리고 머리가 내리는 어떤 명령에도 방해받지 않는 그 나름의 조용한 리듬에 내맡긴 채 외부 세계를 잊은 듯이 보였다. 바로 이와 같은 외부세계에 대한 망각이 그녀가 스타킹을 신을 때의 모든 태도와 몸놀림에도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스타킹을 신을 때의 그녀의 태도는 둔중하지 않고 오히려 유려하게 우아하고 유혹적이었다. 그것은 젖가슴과 엉덩이, 다리에의 유혹이 아니라 몸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바깥세상을 잊으라는 요구였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일종의 의식 같이 언제나 동일한 패턴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은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행위 그리고 나서 약간 같이 누워 있기’이다. 이렇게 사랑이 깊어가던 어느 날 갑자기 한나가 사라진다. 그런데 미하엘은 한나가 말없이 사라진 것을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또 다른 한편 죄책감과는 별도로 미하엘에게 한나와의 사랑은 깊은 상처만 남긴다.
 
미하엘은 한나와 사귀면서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굴욕감을 느낀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절대로 그 누구도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굴욕을 감수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상실의 아픔을 가져올 만큼의 사랑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한나와의 짧은 만남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다 약 7년 후인 1966년 대학에 진학한 미하엘은 홀로코스트 관련 세미나 수업의 일환으로 참석한 나치 전범 재판장에서 피고석에 앉아있는 한나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1922년에 태어난 한나는 베를린에 있는 지멘스 회사에서 일하다 1943년 가을에 나치 친위대에 들어갔다. 1944년 초 아우슈비츠에서 근무하고 1945년 겨울에는 크라카우 근교의 작은 수용소에 배치되었다. 여기에서 그녀는 매달 60명씩 선발하여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보냈으며, 그 후 수용소가 폐쇄되어 수감인들을 서부로 이동시키면서 수많은 사람을 불에 타 죽게 내버려두는 등 반인륜적 만행에 직접 가담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만행의 동기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문맹이었다. 지멘스 회사에서 근무조장 자리를 제안했지만 문맹이라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친위대 경비원으로 자원입대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나치에 부역한 죄목으로 한나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한나는 분명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행위에 가담한 범죄자이다. 따라서 미하엘 역시 한나를 비난하고 부인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다. 우선 그녀의 행동 모두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어려운 처지에 있던 자신을 돌봐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녀가 경비원이 된 것도 남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문맹이라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뿐이었다. 수치심 때문에 한 행동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여기에 자신의 문제까지 결부된다. 자신은 범죄자를 사랑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 역시 공범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 나치 전범 재판장 피고석에 앉아있는 한나(출처=네이버 블로그).

◇미하엘의 이중구속의 원인 - 한나
 
이렇게 하여 미하엘에게 한나는 이중구속의 원인이 된다. 즉 한편으로는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한나를 단죄해야 할 당위성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를 저지른 개인적인 동기가 이해되기 때문에 쉽게 단죄할 수 없는 고뇌 내지는 범죄자를 사랑했다는 죄책감이라고 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동시에 가지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녀가 저지른 모든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고, 그녀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그녀를 외면하고 배반하는 것이므로 이해와 유죄판결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미하엘은 이해와 유죄판결 사이의 이중구속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중구속 이론에 의할 것 같으면 이중구속에 처한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에 빠져 마비, 분노, 불안증세를 보이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사회적 판단능력을 상실하여 정신분열증’으로 발전된다.
 
미하엘의 경우 정신분열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지만 결혼 6년 만에 부인과 헤어지고, 이혼한 후에도 여러 여자를 만나지만 그 누구와도 원만한 관계를 이끌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그의 일상이 순탄하지 못한 이유는 이중구속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한나가 어디를 가나 그를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할 때도 한나와 비교를 하고, 사법관 시보 시절 강제수용소 세미나를 주관하던 교수의 장례식장을 가기 위해 전차에 오르자 저절로 한나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미하엘은 한나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회피 내지는 도피를 택한다. 그가 사법관 시보를 끝내고 법제사 연구학자의 길을 택한 것도 사실은 ‘잿빛과 삭막함과 황량함이 전부’였던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또 18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한나에게 단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는데, 그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한나가 출소 직전 교도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만, 그녀의 자살 또한 미하엘을 해방시켜주지 못한다. 회피나 죽음이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한나가 사망한 지 10년 후인 1994년 미하엘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한나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물론 그 자신도 글쓰기를 통해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43년에 태어난 미하엘은 홀로코스트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세대에 속한다. 그러나 한나와 약 5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짧은 만남은 미하엘의 결혼생활이나 다른 여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는 앞으로도 계속 한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떨쳐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미하엘의 이런 태도, 그것은 바로 현재의 독일사회가 이전 세대가 저지른 만행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리고 또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이런 성숙된 사회 분위기 덕분에 독일은 주변 국가들의 동의하에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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