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환단고기’(桓檀古記) 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책도 많지 않을 것이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 책을 ‘위서'(僞書)라 규정하고 이 책을 토대로 우리 역사의 빈칸을 채우는 것을 위험시한다. 그러나 재야학계는 ‘환단고기’를 상고사의 진심을 전하는 바이블과도 같은 존재로 받든다.

  이 책은 1979년말 필사본이 영인되어 공개된 이래, 위대한 민족상고사란 갈망하던 국민일반과 재야학자들 사이에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번역본도 7~8종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며, 모두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추정도 나와 있다. 재야학계는 이 책을 토대로 하여 상고사의 골조를 세워갔다.

 (흔히 재야학계를 말하지만, 70년대 중반에 ‘국사 찾기 논쟁’을 벌이던 재야와 80년대 중반 이후의 재야는 다르다. 70년대 중반의 재야학계는 단재 신채호나 정인보, 안재홍 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학설에 토대해서 주류학계를 공격했지만, 최근의 재야학계는 대부분이 ‘환단고기’에 토대하여 상고사를 채우면서 일제하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민족상고사인식을 부인하기까지 한다.)

 이 책이 종교계와 사회에 미친 영향도 크다. 증산교계의 일부 교단은 이 책을 민족사를 설명하고 자기종교의 교리를 보강하는 기본 자료로 채택하였다. ‘다물’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것도 이 책이며, 따지고 보면 월드컵때 ‘붉은 악마’들이 치우를 마스코트로 삼은 것도 ‘환단고기’가 치우를 우리민족의 영웅으로 그려준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단군상을 전국의 학교에 세워서 단군상 공방을 야기한 단체도 ‘환단고기’에 토대한 상고사를 설명문에 반영하여 시빗거리가 되었다.

 이 책이 급속히 보급되어가면서 주류학계의 견해를 비판하는 전거로 이용되자, 주류학계는 이 책의 정체를 의심하는‘위서론’을 제기했다. 이 책을 위서로 보는 주요 이유는 ▲ 책 속에 근대적 용어나 관념들이 너무 많고 ▲ 이 책이 1911년에 편집되었다거나 1949년에 필사되었다는 것을 확증할 증거가 없으며 ▲ 이맘이나 이맥 같은 인물에 의해 고려조나 조선조에 저작되었다고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없고 ▲ 여러 정황이 일제기 이후에 알려진 책이나 사료를 보고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등 여러 차원에서 제기된다. 위서론자들은 이 책은 공개자인 이류립에 의해 1970년대로부터 멀지 않은 시기에 위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위서론자들은 물론, 이 책이 말하는 상고사 내용도 사실일 수 없다고 본다.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허구적 창작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위서론에 대해 이 책에 대해 애착을 갖는 이들은 반론을 제기한다.

 반론자들은 책에 나오는 근대적 용어나 관점들은 전승이나 필사과정에서 추가되거나 바뀌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위서론자들은 언제 누가 왜 이책을 위작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대지 못하고 추측성의 정황증거만으로 이 책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으로 이 책이 전하는 상고사의 진실에 위기감을 갖는 이들이 (식민사학에 물든 자들이) 이 책의 사료가치를 박탈하고자 내놓는 무리한 주장이라 규정한다. 이들은 특히 삼국정립 이전의 상고사를 이 책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반문한다.

 생각컨대 이 책을 접하는 학도들은 이같은 상반된 논쟁 가운데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를 두고 혼란을 경험할 것 같다. 회고해보면 필자도 그와 같은 혼란의 과정을 거쳐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필자는 학계에서 활동하는 인사들 중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환단고기’를 접했던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의 공개자인 한암당 이유립 선생으로부터 당신이 직접 수정한 영인본을 증정 받았으며, 이 책에 대해 한암당 선생과 많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역시 의문의 핵심은 이 책이 과연 역사의 진실을 얼마나 진술하고 있는지 하는 것과, 이 책이 간직되어온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한암당 선생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또 나름대로의 추적을 통해 필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현재 전해지는 책은 한암당 선생이 최종적으로 편집과 가필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러나 한암당 선생이 이 책의 모두를 조작하지는 않았고, 적어도 한암당 선생에게 전달된 모종의 문헌적 또는 역사인식상의 전승이 있었다. 또한 현재의 책 내용 중 얼마만큼이 한암당 선생이 추가한 부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방증해주는 고고학적, 문헌적 자료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이 책을 토대로 상고사를 연구하는 것은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하는 이들은 이 책이 전해주는 민족사의 웅대함에 대해 감격할 것이고 이 책이 말하는 내용이 진실이기를 바라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토대로 상고사의 골조를 세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위대한 민족사를 희망하는 열정이 크더라도 우리는 합리적 지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그에 접근해야 한다. 민족은 분명히 우리를 뜨겁게 할 가치가 있는 실체이다. 그러나 민족적 긍지나 소속감이나 애정의 근거와 계기는 일단은 ‘환단고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참고로 북한 학계는 ‘환단고기’를 위서라 규정한다. 이 책은 근래에 편찬된 것이고, 이맥이나 이암 같은 앞 시기 사람의 이름을 거짓 거명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규원사화’에 대해서는 위서로 보지 않는다. ‘규원사화’가 1675년(숙종 2년)에 북애라는 실존인물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것은 믿어도 된다는 의미이다. ‘규원사화’는 환인에 의한 천지창조과정과 한웅에 의한 민족개창과정 및 단군에 의한 배달국,조선 건설과 47대를 거치면서 이어온 단국시대에 대해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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