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용택(철학과 교수)

세월호가 침몰한 후 200일이 지났다. 대한민국호의 한 단면인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군대 총기난사, 환풍기 붕괴사고 등 대형사건이 연달아 터졌고, 전세값 급등, 최악의 취업난, 공무원연금 축소 등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적 저항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언론과 예술에 재갈을 물리고 통신검열을 하면서 조지 오웰의 1984년 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여기저기 화려하게 광고판이 반짝이는 거리에서 시민들의 웃음은 사라지고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하기야 너무 오랫동안 경쟁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이기에 예전부터도 표정이 어둡고 굳어 있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우리 사회 전역에서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 중 고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조차도 학생과 교수 모두가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유일한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행복이니 삶의 질이니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에서 최하 수준에 머물고, 전 세계를 상대로 조사했을 때도 중간 이하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동시간, 대학등록금, 남녀평등지수, 청소년행복지수, 노인빈곤율, 양극화, 자살률, 출산율 등에서 세계에 내놓기가 부끄러운 순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1970년 250달러에서 지금은 2만5천 달러로 치솟을 정도로 세계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하였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경제규모는 큰데 삶의 질은 최악이라는 걸 보여주는 나쁜 모델이 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아름다워야 할 학창시절을 반납하고, 교수들마저도 성과급연봉제로 인해 성과량을 늘리는 데만 급급하면서 동료간에 신뢰가 무너지고 학문과 대학이 황폐화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자타가 놀랄 정도로 경이적인 성장을 하게 된 데는 경쟁의 힘이 크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성장과 경쟁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 자원과 인구를 감안하지 않은 채 계속 성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말단비대증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경쟁으로 멍든 국민들을 더 치열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우리 사회를 싸움터를 넘어 지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성장으로 생긴 병폐와 무한 경쟁을 하다 다친 상처들을 다시 성장과 더 치열한 경쟁으로 고쳐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실패할 것이 뻔하다.

가난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경우에서는 부(富)가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 달러 이상 되면 경제성장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 1970~1990년대 고도성장의 맛을 본 세대들은 여전히 성장이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믿겠지만 그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추동(推動)해온 성장정책은 10여 년 전부터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을 더 많이 드러내면서 한계가 온 것이다. 우리사회의 성장통을 치유하기 위해선 성장 대신에 성숙 사회로, 경쟁 대신에 협력을 강조하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행복한 인간은 긍정의 심리학과 힐링(healing)만으로는 안 된다. 마취제는 고통은 잊게 하지만 근본적 치유는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고통의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어떤 일을 하든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며, 안전, 의료, 교육, 일자리 등을 걱정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하고, 동료와 이웃을 경쟁상대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나누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 금수강산으로 상징되는 아름다운 자연과 한류로 대표되는 독특한 문화 등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문제는 방향이다. 이제는 경제가 아니라 행복이다. 정부와 국민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부족한 점을 채워간다면, 국내총생산(GDP) 수치를 높이는데 매달리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높이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삶의 질도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