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발발 55년 만에 ‘미완’이기는 하지만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 발간되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표명한 것은 4·3의 진실 찾기와 4·3에 대한 ‘지배적 기억’을 변환시키려고 치열하게 전개해왔던 그동안의 기억투쟁의 중요한 성과였다. 그리고 그 후 처음 맞는 올 4월제는 일부 행사가 총선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장소가 되었고 위정자들의 요식행위적 절차에 그쳤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동안의 4월제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그러나 4·3을 둘러싼 기억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고통받는 몸’, ‘상처받은 몸’에 체현되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4·3사건을 ‘1947년 3·1절 경찰발포사건으로 시작돼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입산금지령이 풀릴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2만5000~3만명의 무고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공식규정하고 있지만 4·3은 1954년 9월 21일자로 종결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행위’로서 국가폭력은 종료되었지만 ‘상태’로서의 4·3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직접, 간접적인 피해자에게 일생동안 지속될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남겼고 생존자는 물론 생존자의 가족과 사망자의 유족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올 4월제 행사의 하나로 <4·3후유장애인 생애사 아카이브전>이 국립제주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고통받는 몸에 체현된 4·3에 대해 다시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상처를 건드리면서 4·3고통의 기원을 찾아나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몸에는 이미 사회적 역사와 문화적 이해가 녹아있고, 고통은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표현한다. 생명체는 고통을 두려워하고 고통을 가져오는 그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따라서 두려움에는 몸의 상태와 기억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제 막 두려움과 고통으로, 괴로움에 시달려 왔던 4·3 후유장애자들이 말문을 열었고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말이 없는 죽은 자들을 대신해서 사람들이 죽어간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이는 4·3 당시의 지역상황과 피해가족의 삶을 복원해낼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역사 속의 4·3’을 현재화하고 아래로부터 재조립하는 것인 동시에 4·3기억의 미래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폭력에 의해 침해당한 섬 제주가 ‘평화의 섬’임을 주장할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시금석인 동시에, ‘평화의 섬’이라는 채택된 제주의 상징을 지역정체성 확립으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4·3특별법 개정요구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지금 이미 결정된 유형, 무형의 후속사업을 추진해나가는 이외에, 4·3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으로 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4·3의 이면과 4·3희생자에 대한 보상법, 4·3의 성격규명 등 제주4·3의 현재화와 4·3기억의 미래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브루스 커밍스는 제주4·3을 현대 한국정치의 현미경이라고 보았다. 특히,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격규정이 되지 않은 4·3에 대한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4·3을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대 한국의 정치와 사회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1998년 이후 4월제의 화두가 돼온 해원과 상생, 그리고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이후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평화와 인권의 실제적 내용을 담아내면서 4·3을 이야기하는 것, ‘역사 속의 4·3기억’을 현재에 이야기하되 현재 속에 가두어놓지 않고 모두가 함께 일어서는 희망의 기억으로 승화시켜 4·3기억의 새로운 구성과 창출로 나아가는 것을 포함한다.
  그동안의 기억투쟁이 4·3의 어떤 부분을, 어떤 의미로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싼 것이었다면, 이제 4·3을 둘러싼 기억투쟁은 그동안의 성과를 폭로하는 아래로부터의 살아있는 역사자료를 모으고 그동안 감춰져야 했고 무시되어야 했던 제주도민의 체험과 기억을 부활시켜나가야 한다. 이것은 4·3의 고통의 기원을 찾아나가는 일이며, 진정한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제주가 진실로 ‘평화의 섬’임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동안의 4·3의 진실발굴과 운동과정을 정리하여 성과를 보존하는 일 이외에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라는 구도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고 리드해나가는 위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4·3 진상규명운동을 통해 얻은 성과에 기반해 제주를 참된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나가고 제주정체성 확립으로 승화시켜나가는 것이야말로 4·3기억의 미래화를 위한 향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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