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는 시간관리와 궤를 같이 한다. 갈래갈래 나눠진 길 중에 오직 하나의 길에서 자전거는 굴러간다.
 사람 역시 많은 일 중에서 단 하나를 택하여 일을 처리한다. 여러 가지 중에서 오직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이것은 자전거와 시간이 갖는 필연이다.
 자전거는 운전자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전봇대 방향으로 머리를 향하며 “어, 어, 어” 해보아야 전봇대에 부딪치고 만다. 머리가 전봇대를 향하고 있으니 자전거는 전봇대를 향해 돌진한다. 자전거를 탄 사람의 머리는 자전거가 나아갈 곳을 미리 앞으로 당긴다. 운전자의 머리는 자전거가 나아가는 방향 그 자체이다. 시간 역시 머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시간은 방향성을 갖는다. 바둑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바둑을 잘하게 되어 있다. 관심사항을 어느 주파수에 맞추는가에 따라 시간의 구성이 달라진다. 시간은 관심방향으로 나아간다. 관심 주파수는 앞에 펼쳐질 미래를 미리 앞으로 당긴다. 인생은 관심의 덩어리이다.
 자전거가 앞으로만 굴러가는 것처럼 시간 역시 앞으로 나아갈 따름이다. 시간은 불가역성을 갖는다. 탈무드는 “하루를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만회하는데 이틀이 걸리고, 이틀을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만회하는데 나흘이 걸린다.”고 말한다. 다가올 일들 중에 어떤 일을 먼저 하느냐가 시간관리의 관건이다.
 늪과 강은 둘 다 물로 이루어져 있다. 저항 없는 늪은 정체되어 있지만, 강에는 둑의 저항이 있어 흘러간다. 생선이 썩지 않으려면 냉동실의 한기를 온몸에 담아야 하고 소금은 살살이 절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라고 말한다.
 위태로운 두발 자전거는 찰나의 순간에 바퀴를 굴림으로써 넘어지지 않는다. 자전거는 흐르는 강물처럼 길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아간다.
 가치 있는 일일수록 저항이 크다. 쉬운 일 중에 가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자전거는 오르막길에서 내리막길로 바뀔 때 편안하다. 일을 처리하는 우선순위도 자전거타기처럼 저항이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나아갈 때 편안하고 성과가 크다.
 자전거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서로 다른 리듬박자를 갖는다. 저전거가 구르는 길처럼 사람 역시 상승과 하강의 바이오리듬을 갖는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페달을 밟는 힘이 다르고 들썩이는 엉덩이 자세가 달라지듯이 하루를 보내는 시간 역시 달라야 한다. 에너지가 충만한 아침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아침은 저녁과 다르다. 그래서 성경 잠언(6:10-11)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하겠느냐? 그러면 가난이 부랑배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거지처럼 달려든다.”
 피스톤처럼 힘차게 들썩거리는 자전거는 흘러오는 길을 보낸다. 시간은 길과 함께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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