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에 걸린 광고 포스터들이 갑자기 나타난 게릴라들로 인해 낙서로 뒤덮이는 수모(?)를 겪었다.
 이들은 이른바 ‘안티 광고 게릴라’들로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광고를 반대하는 사람이 모여 현장에서 기습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플래시몹’(flashmob, 익명의 네티즌들이 인터넷과 e메일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모여 똑같은 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것)과 같은 형태라 볼 수 있다.
 이 날의 기습 사건은 파리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몽펠리에·마르세유·로마 등 프랑스와 그 밖의 유럽 15개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시가지를 점거한 채 대대적인 안티 광고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하철 광고판 공격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광고판들이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다. 한 안티 광고 사이트에 ‘광고판을 뒤덮자’는 제안이 실리자 이에 공감한 사람들이 제발로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들의 행동을 꾸짖기보다는 광고 오염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준 ‘이유있는 반항’으로 평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안티 광고 단체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그중 유명한 단체가 이번 지하철 광고판 습격 작전에 수훈을 세운 ‘광고 공격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비롯해 1992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조직된 ‘프랑스의 풍경’, 1999년 리용에서 조직된 ‘광고 파괴자’ 페미니스트 안티 광고 단체인 ‘라 뮤떼’(La Meute)등이 있다. ‘라 뮤떼’는 해마다 가장 덜 선정적인 광고를 뽑아 상을 주는 이벤트를 벌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광고판에 낙서한 문구들을 보면 ‘광고에 진절머리가 난다’, ‘광고 없는 세상을 꿈꾼다’, ‘광고가 우리를 죽인다’ 등 ‘광고는 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그들의 슬로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광고를 적대시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광고를 싫어하고 있을까.
 
안티 광고주의자들은 광고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노 로고(No Logo)’는 안티 광고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책으로 저자인 나오미 클라인은 상표와 광고로 뒤덮인 지구는 ‘제로 공간’, ‘제로 선택의 세계’가 돼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우리나라의 길거리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건물마다 층별로 가게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로 인해 간판들이 겹쳐 보이거나 다른 간판들로 인해 아예 보이지 않는 것들도 많다. 또한 밤이 되면 서로 튀기 위해 요란한 색깔과 모양들로 사람들의 정신을 빼놓는가 하면, 거리에 간판을 세워놓아 보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우려는 광고의 양적인 부분을 넘어 광고가 질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광고’가 아닌 ‘기업의 이윤을 위한 광고’로 전락해 버리진 않을까 하는 문제이다.
 이들의 주된 취지는 전 지구를 상업적 자본주의 시장으로 만드는 데 광고가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자각하자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자와 막스주의자들의 광고비판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로 인해 대량으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제품을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광고가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수요를 창출하여 기업이 추구하는 사적인 이익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안티 광고주의자들은 현재 WTO(세계무역기구)에서 논의 중에 있는 ‘서비스교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따라, 병원과 사립학교를 포함한 사회 모든 기관이 광고를 필요로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며 ‘세계의 민영화’, ‘정신의 상품화’, ‘광고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광고 공간을 뒤엎어버리는 시위를 감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위현장에 뿌려진 전단지 내용을 보면 ‘WTO가 교역 장애로 인해 학교와 의료기관은 상인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사회적 권리와 평등의 기초가 되는 원칙은 점차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프랑스의 앞날을 예견하고 있다.
 이들은 ‘환경을 손상시키지 말고 도시와 시골을 장악하고 있는 광고판을 철두철미하게 덮어버리고 세계의 민영화에 항의하는 집단 행동으로서 공공장소를 우리에게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들의 이러한 외침의 주 타켓은 ‘광고’가 아니다. ‘광고비판’은 이들의 외침의 시초에 불과하다.
 안티 광고주의자들은 광고를 다국적 기업과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전유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이들의 외침은 ‘광고 죽이기’가 아닌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광고를 이용하는 기업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