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누구나 아는 천재 과학자이다. 그가 ‘상대성 이론’을 발견함에 있어서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 1875~1948)를 빼놓을 수 없다.
 밀레바는 선천성 좌골통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천재소녀’라고 불릴 정도로 총명한 아이였다. 그 당시 여성이 대학과정까지 교육을 받기란 쉽지 않았지만 딸의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는 세르비아 왕실인문고등학교를 거쳐 스위스 국립공과대학에 그녀를 유학 보냈다.
 그곳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나 서로 사랑했지만 아인슈타인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결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1902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사이에서 ‘리저렐’이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밀레바는 석사학위 논문을 중단하고 몰래 고향을 돌아가 아이를 낳았다. 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리저렐은 어느 가정에 입양됐다.
 1903년 1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공동연구도 다시 시작했다. 2년후, 두 사람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해 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결혼 전에는 두 사람의 공동저작에 ‘아인슈타인-마리치’라고 공동서명을 했지만 결혼 후에는 그냥 ‘아인슈타인’으로 대신했다.
 사실 논문의 원본이나 메모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밀레바가 공동작업에서 어느 만큼 비중을 차지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증언과 아인슈타인의 말을 미뤄볼 때 수학적 문제를 해결한다든지 아인슈타인의 착상을 수학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은 밀레바였음은 분명하다.
 1904년 첫 아들 한스가 태어나고 1910년에는 둘째아들 에두아르트가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병약해 아이를 돌봐주다 보니 공동연구를 할 수 없게 됐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둘의 사이는 더 멀어졌다.
 1919년 둘은 이혼했다. 3년 뒤인 1922년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 상금을 밀레바에게 주었다. 그 돈으로 밀레바는 잠시나마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들의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가난을 면치 못했다.
 그 뒤 그녀는 병약한 아들을 돌보며 삶을 살아오다 1947년 8월 4일 병상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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