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의 도의적 의무가 여느때보다 필요하다

최근 눈길을 사로잡았던 기사 제목은 “‘슈퍼맨’ 일곱 아이들 제주도 사진집 출간, 수익금 전액 기부”다. 이따금씩 보는 육아 예능에 대한 기사였다. 원체 아이들을 좋아하는지라 교육대학에 진학한 필자 역시 텔레비전 속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하릴없이 ‘엄마미소’를 짓곤 한다.
 
MBC 〈아빠! 어디가?〉를 필두로 육아 예능의 전성시대는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 KBS1 〈엄마의 탄생〉 등으로 이어지며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이와 동시에 육아 예능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내지 ‘위화감’에 대한 논란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방송을 보면서 남의 집 아이가 피우는 재롱보다 그 아이가 쓰는 각종 고가의 육아용품에 더 눈길이 간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자체에 대한 부러움을 표하기도 한다. 아이의 잠든 얼굴만 보기 일쑤인 워킹대디, 워킹맘에게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꿈만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주말 저녁마다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는 이유다.
 
가족 예능의 홍수 속에서 마지막으로 출사표를 던진 건 SBS 〈아빠를 부탁해〉다. ‘집안의 가장이 아닌 집안의 가구로 전락한 황혼기의 아빠가 인생의 황금기를 맞은 딸에게 아빠를 부탁해본다’는 의도의 이 프로그램은 네 명의 배우이자 아버지와 그들의 ‘다 큰’ 딸들이 나온다. 언제부터 대화가 사라지게 된 부녀의 일상과 서먹한 관계를 개선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는 부녀의 모습은 마냥 흐뭇하게만 지켜보기 어렵다.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네 명의 딸은 ‘공교롭게도’ 모두 연예계 혹은 방송계 지망생이기 때문이다. 이에 ‘연예인 세습’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에 씁쓸해지는 건 또래의 학생들이다. 단지 누군가의 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꿈에 성큼 가까워질 기회를 얻은 출연자들은 극심한 취업난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그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학자금, 월세 등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들로부터 자유로운 출연자들이 아빠와의 사이가 멀어졌다며 눈물짓는 모습은 ‘배부른 걱정’을 하고 있다고 비춰지기 십상이다. 실로 관련 기사의 의견란에는 “육아 예능을 보면서 왜 부모들이 위화감을 느낀다는 건지 비로소 알겠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혹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보면 그만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방송이 갖는 지대한 힘은 이를 단순히 개인의 취향의 영역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제주도 사진집은 원래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다. 시청자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제작진은 수익금을 결국 전액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익금 전액 기부”라는 따스한 기사 제목 뒤에 숨겨진 뒷이야기는 ‘일만했던 아빠들의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라는 기획의도에 회의감을 가지게끔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모금 프로그램이었던 KBS1 〈사랑의 리퀘스트〉는 지난해 12월, 17년의 종지부를 찍었다. ‘모금 방식이 낡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을 받던 이 프로그램은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어린 아이들의 사연이 자주 소개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아닐 것이다. 이는 〈사랑의 리퀘스트〉의 암묵적인 폐지 사유가 낮은 시청률임을 방증한다. 한 마디로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식지 않는 육아 예능의 인기 속에서 ‘공영방송’ KBS가 내린 이와 같은 결정에 씁쓸함을 느낀다.
 
‘가정의 달’ 5월도 어느덧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실에 치여 여행길에 오르는 대신 텔레비전 속 연예인 가족들이 떠나는 여행을 보며 휴일을 보낼 수밖에 없는,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수많은 부모들과 학생들은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들의 도의적 의무에 방송사들이 보다 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져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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