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육적” “광고적 표현” 맞서 광고계·심의위 시각차 여전 
             어린이 TV 광고, 공익 존중·상업성 ‘두마리 토끼’ 잡아야 
             광고업계·방송사, 적극적인 자율규제 절실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사회적 책임으로 여겨져 왔다. 지나치다 싶으리 만큼 경쟁적이고 권리 침해적인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자기 방어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어서 이들의 보호가 글로벌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보모 역할을 하고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광고는 그 영향력 면에서 다른 어느 매체를 통한 광고보다 강해 주된 규제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표현의 자유로서 광고가 누릴 수 있는 범위를 살펴보고, 어린이 광고규제가 갖는 타당성을 검증하고자 한다. 또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어린이 광고 규제정책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 나라 정책의 현주소는 어딘지 확인하고자 한다.

  공익으로서의 어린이 보호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지는 TV 시청과 어린이 비만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보도하면서,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많은 어린이 일수록 비만하다는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어린이일수록 비활동적이고, 광고를 통해 소개되는 패스트푸드를 많이 섭취하며, 그 결과 비만의 정도가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포스트지가 주장한 이러한 내용은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미국 Texas A & M 대학의 연구는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광고 메시지를 쉽게 신뢰하고, 11세 내지 12세가 되어서야 광고에 대응하거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 다른 연구는 아홉 살 또래의 어린이들은 광고를 보고 난 뒤에 이전에 갖고 있던 자신들의 기호를 버리고 광고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광고가 어린이의 심리적, 신체적 발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료로서, 어린이 광고규제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광고 속에 감추어진 상품판매의 의도된 상업적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출된 정보에 쉽게 설득되며, 광고를 단지 정보나 엔터테인먼트로 이해하여 텔레비전에 비쳐지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광고를 통해 나타나는 상업적 표현이 언론자유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광고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은 더 큰 공적인 이익을 갖는 것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공공의 자산인 지상파를 이용하는 방송사는 어린이 보호라는 공공의 이익에 충실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이 광고 규제는 광고의 사회적 윤리와 공공의 건강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는 허위광고와 그 허위 광고가 초래하는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 등의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
  미국의 어린이 광고규제 정책은 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FCC)의 1974년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보고서는 어린이 TV 프로그램의 구성에 관한 방송사의 일반적 책임과 광고 허용의 범위와 규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린이 프로그램의 지나친 상업주의를 경계하고, 공공의 이익에 속하는 어린이 보호를 위해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자율규제를 실행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어린이 방송시간대의 광고 시간을 주중에는 시간당 12분, 주말에는 9분 30초를 초과할 수 없도록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정규 프로그램과 광고를 구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레이건 대통령의 탈 규제 정책이 들어서는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며, FCC는 탈 규제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보고서에서 밝힌 규제정책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FCC의 정책은 두 차례에 걸쳐 연방항소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재판부는 Action for Children’s Television v. FCC 사례에서 어린이 광고의 가이드라인을 폐기한 FCC의 결정은 합리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결하고 보다 설득력 있는 정책 폐지의 근거를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이어 National Association for Better Broadcasting v. FCC 사례에서 어린이 정규 프로그램과 길이가 비슷한 광고에 대해 스폰서를 명시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FCC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이와 같은 광고에 대한 적절한 식별을 하지 않는 것은 후원자를 밝히도록 명령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결국 이 두 사례는 90년에 발효된 어린이 텔레비전 법의 근간을 마련하는 토대가 되었다. FCC의 1974년 보고서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은 어린이 광고의 길이를 제한하고 있고, 방송사들이 유익한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광고가 지나치게 상업성을 띠지 않도록 방송사가 FCC의 규정을 잘 지킬 것을 주문하면서, 만약 이러한 규정을 어겼을 경우 면허 갱신에 불이익이 초래될 수 있다고 조건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미국의 어린이 광고와 관련된 정책은 규제에서 탈 규제로, 탈 규제에서 자율규제로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규제정책이 어린이 광고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광고의 방법이나 형식 등에 따른 것으로, 어린이 보호의 법익도 중요하지만 상업적 표현을 통한 표현의 자유도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익형량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연방거래위원회가 허위, 과장광고를 규제하고 있으며 어린이 광고 심의위원회와 전국광고심의기구, 전국광고국, 그리고 전국광고심의위원회 등이 어린이 광고의 자율심의를 실시하고 있다. 어린이 광고 심의위원회는 어린이 TV광고의 기준을 채택하고 광고주에 의해 제출된 광고의 심의를 포함한 어린이 TV광고의 일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유럽국가의 어린이 광고규제 

 오늘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어린이 광고규제의 주된 정책은 텔레비전 광고가 어린이의 정신적 신체적 상해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는 ‘국경 없는 텔레비전’ 칙령 16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조항은 보여진 그대로 믿어버리기 쉬운 어린이들의 속성에 의존한 상품 및 서비스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광고에 나온 상품을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르도록 조장해서도 안 되며, 어린이들이 특별히 신뢰하는 부모나 선생님,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악용해서 광고에 나온 상품 판매를 유도해서도 안 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가장 엄격한 어린이 광고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이다. 이 두 나라는 12세 미만의 어린이를 상대로 한 모든 TV광고를 하루 24시간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린이 프로그램의 직전과 직후의 어떤 광고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이러한 광고 금지정책을 전 유럽연합국가가 받아들이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어린이 광고를 허용하는 것은 칙령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스웨덴의 이러한 강력한 규제의 바탕에는 광고의 상업적인 본질과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순수성을 악용하는 행위는 반드시 규제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는 정부의 규제가 아닌 광고업계의 자율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자율규제 기관은 광고기준위원회로 광고업계가 준수해야 할 기준을 설정하고 방향을 제시해줌으로써 자율규제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를 해치는 광고, 쉽게 신뢰하는 어린이의 속성을 악용하는 광고, 광고된 상품을 갖지 못하면 뒤쳐진다는 생각을 유도하는 광고, 부모에게 구매를 요구하도록 부추기는 광고 등은 광고기준위원회의 엄격한 자율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밖의 유럽국가들도 다양한 어린이 광고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오후 8시 15분 이전의 어린이 방송시간대에는 광고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벨기에는 12세 미만의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전·후 5분간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덴마크 또한 스웨덴과 비슷한 강한 규제정책을 따르고 있으며, 독일은 어린이 프로그램에 광고시간을 허용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의 스폰서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에서는 1999년 새롭게 마련된 어린이 광고 금지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의회는 광고 금지법안이 미디어 산업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통해 법안 자체를 폐기 시켰다.
 한편, 스웨덴의 어린이 광고 전면금지 정책은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광고주들이 금지 정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율규제가 실행되고 있는 영국에서 위성을 통해 광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스웨덴의 정책은 어린이 광고를 효율적으로 금지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어린이 광고의 금지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광고는 어린이들이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삶의 실제이지 어린이들로부터 감추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며, 광고에 노출되지 못하게 어린이들을 기르는 것은 그들을 오히려 광고에 더 쉽게 속게 만들 뿐 이라고 강조한다.  또 어린이들이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선택에 대해서 알아야 권리를 갖고 있고, 어린이 광고의 금지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행위와 다름없으며, 결국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질을 저하시키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보다 근본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규제

 우리나라의 어린이 방송광고에 대한 규제는 방송위원회로부터 업무를 위임 받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전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외견상 자율심의기구라고 하지만, 방송위원회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실천하는 것이어서 실상은 타율규제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기구의 심의규정은 어린이 광고가 갖추어야 할 내용과 형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는 우선 어린이를 13세 미만의 자, 청소년을 19세 미만의 자로 정의하고, 방송광고가 이들의 품성과 정서, 가치관을 해치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 방송광고는 상품의 소유가 어린이의 능력과 행동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표현, 상품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열등감의 대상이 된다는 표현, 상품을 구입하도록 어린이를 충동하거나 부모에게 상품 구매를 요구하도록 자극하는 표현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더불어 어린이의 사행심을 조장하거나 건전한 식생활을 저해하는 표현도 규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 다른 규제의 근거로 방송법과 청소년보호법을 들 수 있다. 방송법 제 73조 방송광고 등에 관한 조항은 광고와 프로그램을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고, 광고시간은 방송프로그램시간의 100분의 10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청소년 보호법은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비윤리적인 표현,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표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 두 법이 구체적으로 어린이 광고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청소년 보호와 연관지어 어린이 광고에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린이 광고규제와 관련의 법원의 판결 사례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광고물도 사상, 지식, 정보 등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하는 것으로 언론, 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호를 받는 대상이 된다”고 하는 헌법재판소의 의견을 통해 광고를 바라보는 법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또한 “광고가 단순히 상업적인 상품이나 사실을 알리는 경우에도 그 내용이 공익을 포함하는 때에는 헌법 제 21조의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된다”는 광고의 공익성을 강조한 판결도 눈여겨볼 만하다.
 적극적인 자율규제를 통한 공익의 실천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광고를 통한 상업적 표현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물의 분별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광고는 본질적으로 어린이의 정서와 심리, 그리고 가치관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공익으로서 광고의 규제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린이 광고의 전면금지는 표현의 자유의 침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어린이 광고가 궁극적으로 어린이 보호의 공익을 존중하고 동시에 구매결정의 합리적 판단의 도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광고업계와 방송사의 적극적인 자율규제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인식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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