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후 일찍이 취업전선에 뛰어든 A군은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옷가게 점원으로 취직한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가 저물 때까지 일해 받는 돈은 약 150만원. 이것도 일부는 세금으로 납부된다. 서울에서의 비싼 월세와 스마트폰 요금, 그리고 최소한의 식비를 제하면 그의 손에 남는 돈은 많아야 40만원. 용돈을 아껴 독하게 저축한 결과, 그가 평소에 관심이 많던 비싼 조던 신발을 구매한다. 현재 구매할 수 없는 모델이라는 이유로 보통 신발보다 높은 가격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한동안 애지중지하던 그는 평소 자주 의지하고 애용했던 패션 커뮤니티에 일명 ‘착샷(실제로 착용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를 게시한다. 많은 리플이 달린다. “금수저세요?”
 
실제 유명 SPA패션브랜드에서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내 친구의 이야기다. 우선, 금수저는 흔히 밥 먹는데 사용되는 도구가 단순히 도색된 것이 아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집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절대적으로 설명해주는 단어임이 틀림없다. 그가 남긴 사진보다 회원들의 댓글들이 인상 깊었다. 타 회원의 다른 게시물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외제차, 비싼 의류, 명품 시계가 자리 잡고 있는 사진들에 대한 댓글에는 대부분이 ‘금수저’라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금수저’는 청소년들만의 언어처럼 새롭게 각색된 신조어일까. 유럽 속담 중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siver spoon’은 상속받은 부라는 함축적인 뜻을 가진다. 현재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금수저와 물질적인 속성만 다를 뿐 의미는 같다. 예부터 서양에서는 부모의 재산을 다른 수저로 우리보다 먼저 분리하고 있었다.
 
단순히 부러움으로 시작된 수저 계급론은 질투와 시기심으로 이미 확장돼 있다. 게시물 작성자보다 가난한 자신의 가정환경을 탓하며 비난은 몰론 사회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글쓴이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앞서 사례로 제시한 친구처럼 티끌모아 작은 꿈을 이룬 과정은 전제로써 이미 제외된 듯 보였다. 돈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조선시대 신분제와 무엇이 다른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세상의 빛과 마주함과 동시에 평생 자신의 빚이 결정되는 사회가 도래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은 돈으로부터 나오기에, 이미 계급은 부모의 능력에 따라 지정되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다.
 
일부 청년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부유하려면 부모님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 패륜적인 말이 틀림없으나 수저 계급론을 생각하면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쉬게 된다. 스마트폰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흙수저를 가진 친구들이 채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가야할 시간이라며 불평하고 있다. 이들이 시간당 받는 금액은 5580원. 갑자기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책상 위 펜을 잡는다.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내 자식에겐 동수저라도 물려줄 것이 아닌가. 오늘 배운 영어 표현을 공책에 적어본다.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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