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의 역사속에서 확실한 교훈을 얻어야 독자적 힘을 갖기 위해 새로운 각오 필요할 때

시모노세키 앞바다에서 한반도를 바라본다. 지난 역사 속 한일관계의 착잡하고도 복잡한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임진왜란 이후 약 200년 이상 교류했던 조선통신사들이 상륙했던 항구도시이기도 하지만, 특히 120년 전 조선을 가운데 두고 벌어졌던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그 항구가 바로 이 시모노세키가 아니던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국의 북양대신 이홍장 사이에 이루어진 시모노세키 조약 제 1조는 “朝鮮國의 獨立과 淸國에의 典禮 등의 廢址” 라고 기술돼 있다. 놀라운 일이다. 이 강화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 전쟁 당사국인 청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이었다니 말이다. 그 이전의 강화도조약이나 조미수호조약 같은 당시의 국제조약에서도 이미 명문화돼 있었지만, 이 시모노세키 조약에서도 ‘조선의 독립국’ 임을 명시해 놓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조선 말기 개화파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의 선각자들이 과연 이 시모노세키 조약에서의 ‘독립국 조선’의 의미를 제대로 간파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의 독립문제와 관련해서 당시의 고베 크로니클(Kobe Chronicle, July 21st, 1897)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음을 본다. “It will not be independence even if every street possessed its Independence Arch and every school sang its Independence hymn”
 
이와 같이 일본은 조선의 독립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내비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조선의 독립에 대해 완전히 조롱하는 듯한 논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재필, 윤치호, 이완용 등의 독립신문 주도세력들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선지배 계략을 전혀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본다. 이들에게 있어서 조선의 독립이란 오로지 천 년 이상 종주국 노릇을 해온 중국과의 단절, 즉 독립문 건립의 취지처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매우 제한적인 의미의 개념이었다.
 
당시 개화파가 생각하는 조선의 독립이란 조선의 힘에 근거한 독립이 아니고, 그 대신 조선을 둘러싼 국제적 역학 속에서 묵인되는 독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후자에 의한 조선의 독립이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 세력균형에 의거해서 관련 당사국들의 현상유지 정책을 전제로 했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위의 고베 크로니클 기사에 대해 따끔하게 논박 한 번 제대로 못했을 리가 만무하고, 특히나 독립신문 창간 바로 6개월 전에 있었던 을미사변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일본이 저지른 전대미문의 야만적 행위를 비판해본 적이 없을 리 또한 만무하다.
 
120년이 지난 오늘의 한반도는 어떠한가. 오늘 시모노세키 앞바다에 일고 있는 저 파고가 어쩌면 그토록 120년 전의 파고와 꼭 같은지 실로 놀라울 뿐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어둡게 드리워져 있는 미·일 연합 세력과 중국 세력 간의 전방위적 긴장상태가 심상치가 않다. 전시작전통제권까지도 미국에 넘겨주더니 이제 와서는 어쩌다가 일본군의 한반도 진입가능성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를 일이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문제도 미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을 뿐, 현 정권은 아무 개념이 없는 듯하다. 소위 6자 회담만 재개되면 한반도의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환상도 사실 알고 보면 120년 전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세력균형을 통해 독립 아닌 독립을 유지해보려 했던 것과 닮은꼴이다. 조선 자체로 버틸 힘이 없어 이 나라 이 강토를 강대국의 전쟁터로 내어주고 종국에 가서는 식민지로 전락했던 지난날의 뼈저린 역사 속에서 확실한 교훈을 얻어내야 한다. 주권국가로서 버틸 독자적인 힘이 있어야 독립이고 통일이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주변 강대국이 해줄 일이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이웃 국가는 없다. 이 순간에도 현대판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음모되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한반도를 향해 또 다시 밀려오고 있는 시모노세키의 저 심상치 않은 파고를 이제는 우리 힘으로 넘을 각오를 해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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