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개그맨 박명수는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음 생은 없어요. 엉망으로 살아야 돼요.” 필자는 이 말에 온전하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머리가 띵한 충격을 받았다.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2030세대)’와 ‘7포세대(3포에 더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포기한 2030세대)’를 지나 이제는 ‘N포세대(7포에 더해 모든 삶의 가치를 포기한 2030세대)’에 도달했다. 필자의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이나 그 근방에 있어서 좀처럼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방학에도 계절 학기나 대외활동으로 간신히 이삼일 내려오는 게 전부이고, 명절도 포기한 지 오래다.

필자를 포함한 또래 친구들은 이제 ‘취업준비생’이라는 새로운 나이를 얻었다. 나이나 학년을 말하면 자연스레 “취업 준비하고 있겠네요? 어디에 취직할 거예요?”하는 질문이 따라 붙으면서 24살이라는 나이는 어느 한 구석으로 사라지고 만다. 청춘이라는 말은 이미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따위의 자기계발서에나 쓰는 어휘가 돼버렸다.

그래서 취업준비생이라는 말은 이제 굴레가 돼버린 것 같다. 짧은 여행은 물론, 집에 방문할 때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취준생’은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 안에서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다. 졸업을 앞두고 휴학을 한 또 다른 친구는 본가에서 지내고 있는데 집 안에서는 부모님 눈치가 보여 항상 아침에 나왔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간다. 아플 때도 예외는 없다. 기침을 하며 도서관에 갈 수는 없으니까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필자는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이런 아르바이트 말고, 진짜 꿈이 뭐예요?” 그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사실은 필자가 크게 당황했다는 점이다. 꿈이 뭐냐는 질문 자체를 너무 오랜만에 들었다. 우리나이 또래에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본다는 일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 같았다. 누구도 서로의 꿈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뭐 해먹고 살 거야, 어디 취직할 거야’가 주요 관심사일 뿐이니까.

필자는 개그맨 박명수가 한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삶은 이번 생뿐이에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 그 삶이 엉망이라면 엉망으로 살고 싶다. 지금 당장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는 5kg에 육박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인데 왜 이렇게 몸을 사리며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게 없는 것도 아닌데 왜 항상 내가 소원하는 바는 2순위, 3순위로 밀려나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이 의문도 노트북을 닫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푸스스 사라질 게 뻔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24살이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내 나이를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고 명절에는 갖은 핑계를 대며 친척집 방문을 미룰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친구를 비롯한 진짜 청춘에게 말하고 싶다.

“엉망으로 살아도 돼. 우린 이제야 24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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