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필 사진작가 16일부터 23일까지 “피사체 속에 희망의 메시지 담고파”

▲ 곽상필 사진작가

재래시장 풍경은 언제나 흥성스럽고 포근하다. 동문재래시장이 제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는 자부심은 뒤로 한 채 이제는 올레 17코스로 더 유명한 시장이 됐다. 그 속에서 행복한 꿈을 좇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를 들고 무던히도 쏘다닌 사람이 있다.

사진작가 곽상필이 3월 16일부터 23일까지 동문시장 남수각주차장 입구에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15번째 사진전 ‘상필이가 만난 사람들’을 열었다. 동문재래시장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기획됐다.

▲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동문재래시장 남수각 주차장 입구


전시작품으로는 동문재래시장 축제의 흥성거림, 시장 상인들과 시민들의 모습, 휠체어를 타고 시장 구경에 나선 사람들, 김장이 한창인 상인들의 모습 등 36점을 엄선해 전시하고 있다. 작품과 오래도록 눈을 맞추고 상념에 빠져도 좋을 솔직담백한 이미지들이다.

1979년 제주신문 사진부 수습기자로 언론사에 첫 발을 내민뒤 1993년 제민일보 사진부장으로 활동하다 뇌경색으로 장애인이 된 작가는 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무서울 게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산악반 활동을, 기자시절에는 스킨스쿠버를 할 정도로 왕성한 활약을 했던 건장한 젊은이었다. 하루 아침에 찾아온 뇌경색은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렸다. 심각한 언어장애까지 겹쳐 사람들과 대화도 되지 않고 오른손과 한쪽 발마저 자유롭지 못하자 4년여를 자포자기한채 살아야 했다.

그러나 1997년 우연히 방문한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만난 이후 ‘나의 불행은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쓰러진 뒤 6년 동안 재활을 꿈꾸던 그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구닥다리 낡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다시 셔터를 눌렀다. 이렇게 시작한 사진 작업은 1999년 사진전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사진기자 곽상필은 사진작가 곽상필로 다시 태어났다. 거동은 불편해도 왼손 검지 하나에 의지해 희망의 피사체를 앵글에 담아오고 있다.

2000년부터는 ‘상필이가 만난 사람들’ 연작으로 매년 전시회를 열어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시장상인, 소방관, 새터민의 삶, 중산간마을, 외국인 근로자 등 다양한 주제로 우리네 이웃의 삶과 희로애락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2003년에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 인권과 차별 현실을 드러낸 인권사진집 ‘눈 밖에 나다(휴머니스트)’의 전국 9명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눈 밖에 나다’ 사진집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문화콘텐츠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들을 9명의 사진작가들이 촬영한 사진기록이다.

2005년에는 ‘소방관의 하루’를 주제로 사진집을 발간했다. 2010년에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주최로 열린 ‘제23회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사진부문에 참가해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4년 3월에는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4.3사진전을 열었다. 4.3사진전은 4.3사건 이후 희생자의 유해 발굴, 희생자 및 유족들의 피해모습,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 추진과 정치인들의 위령제 참석 사진 등 4.3해결을 위한 화해와 상생의 모습을 담은 80여점의 사진을 전시했다. 아마도 그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상필이가 만난 사람들’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한편 동문재래시장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서민시장으로 1945년 8월 광복 직후 형성돼 70여 년간 맥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제주도의 유일한 상설시장으로 제주도 전체 상업 활동의 근거지가 됐다. 1954년 3월 시장에 대형화재가 발생한 이후 그해 11월에 복구했으며, 시장이 점점 확장되면서 노점은 줄었지만 지금도 주변 도로에 직접 키운 채소나 나물 등을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시장 상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진


동문재래시장은 마치 원하는 것을 모두 갖춘 만물상 같다. 제주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시장답게 곡식과 야채, 생선, 과일, 식료품은 물론이고 의류, 신발, 생활용품, 농기구까지 없는 것 없이 다 갖추고 있다.

처음 카메라를 메고 동문시장을 서성거릴 때만 해도 매혹하게 될 대상을 찾기 힘들었다고 회고하는 곽상필 작가는 “새벽녘 시장바닥을 서성이고, 시장상인들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동문시장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삶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도민들에게 전통시장의 멋을 알리고 전통시장에 볼거리를 만들어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록 장애인으로 살아온 19년이지만 왼손 하나에 의지해 나의 존재를 알리고 삶의 진정성을 담고자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왔다”며 “‘상필이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을 향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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