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이 있는 방일리 공원을 방문하다

▲ 제주한라대학 옆 방일리공원에 제주 첫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방문객들이 소녀상의 추위를 걱정해 옷을 입혀 놓았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 작은 소녀상이 있다. 다른 이름은 평화비다. 동상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갔던 할머님들의 아픔을 대변하고자 탄생했다.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방일리공원에도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도내 학생들이 십시일반 힘을 합쳐 세운 소녀상에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의지가 담겨있다. 유독 심하게 바람이 부는 날, 방일리공원을 방문했다. 

◇할머님들의 아픔을 담은 작은 동상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김학순 할머님께서 용기 내 세상에 외쳤다.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였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로부터 1년 후, 청춘이  잔혹함으로 물들여졌던 할머님들의 수요집회가 시작됐다. 2011년에 수요집회는 20년이 됐다. 그 해 12월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이해 주한 일본대사관 옆에 첫 소녀상을 세웠다.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한 것이며 할머님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기 위했다. 평화비라고도 불리는 소녀상은 일본측의 지속된 철거 요구로 위기에 처해있다. 관계자 혹은 시민단체들은 물론 많은 학생들도 대사관 앞에서 농성하며 철거를 반대하고 있다. 마음이 언짢았다. 동상이 철거된다면, 평화를 담은 의미도 철거될 것이다.

◇제주 첫 소녀상, 방일리공원에 세워지다

신제주에 위치한 한라대학교를 방문했다. 대학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 시간을 낸 것은 아니다. 바로 정문 앞에 조성된 방일리공원의 제주 첫 소녀상을 보기 위해서다. 꽃샘추위 때문일까. 한산했다. 근처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곤 사람들을 찾아볼 순 없었다. 단발머리와 동양적인 얼굴을 띠고 있는 익숙한 동상이 보인다. 회색 모자와 노란 머플러 그리고 파란색과 하얀색이 교차된 체크무늬의 담요를 덮고 있었다. 아마 소녀를 찾은 방문객들이 추위에 떨고 있음을 염려해 입혀놓았을 것이다. 작년 12월 19일, 도민들과 대학생들의 힘으로 소녀상이 세워지게 됐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고자 혹은 그들을 보호하고자 십시일반 힘을 모았던 사람들의 노력이 매우 대단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은 평화와 인권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참혹했던 과거의 아픔을 잠시 잊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으나 금세 풀렸다. 앞에 놓인 꽃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정체는 목화와 시네나리아였다. 목화는 문익점 선생의 일화를 통해 알고 있었으나, 시네나리아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수채화로 그린 듯한 그림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즐거움과 빛남이라는 꽃말을 가진 시네나리아는 위안부 할머님들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문득 제주에 평화비를 세웠던 청년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인문학동아리 ‘CUM’ 회장을 맡고 있는 현치훈(산업대학원 농업경제학 석사과정) 씨는 동아리원들을 이끌고 사람들과 뜻깊은 행사에 참여했었다. 그는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청년들이 직접 콘서트를 열고 기금을 모았다”며 “준비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손수 우리가 만든 것으로 콘 공감을 얻는 기회를 조성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점점 위안부 할머님들이 지친 나머지 세상을 뜨고 계신다”며 “일본측의 진정한 사과와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안이 할머님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소녀상을 철거하자는 일본의 요구에 관해서도 큰 분노를 표출했다. 부끄러운 역사를 덮으려는 일본 정부의 요구를 좀 더 강경하게 내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들이 그리던 고향으로의 ‘귀향’

2월 24일, 영화 ‘귀향’이 개봉했다. 개봉 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강제로 위안부에 잡혔던 할머님들의 아픔을 영화 속에 담았기 때문이다. 혼자 영화관으로 출발했지만 최대한 많은 인원과 감상하고 싶었다. 슬픔을 나누고 싶었다. 비교적 유동인구가 많은 제주시청 근처의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 광고를 시청하는데 설레는 마음보다 먹먹함이 몰려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기에,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한지 모른다. 주인공은 14살 정민. 지금의 사춘기 여자아이와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평화로운 날이 얼마 지나지 않은 채,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간다.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을 탈출하는 내용으로 영화가 진행됐다. 누구보다 아끼는 딸을 보낸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과 끔찍한 일들을 겪는 조상들을 보며 가슴이 아렸다. 비록 허구의 특성을 가진 영화라는 간접적인 체험이지만 현실성을 지독하게 제대로 묘사한 ‘귀향’은 보는 내내 눈물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1945년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악마 같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뤄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위안부에 강제로 잡혔던 할머님들은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을까. 지금도 이들은 고통 받고 있다. 물질적인 보상이 중요하다. 남은 생을 편히 보낼 수 있는 복지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지급해야할 보상은 진정성이 담긴 사과가 아닐까. 44분만이 살아계신다. 즉, 위안부 문제를 폭로하고 참혹한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44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영국 최고의 총리 중 한명이라고 평가받은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정부는 과거의 잔인한 역사를 잊지 말고 일본으로부터의 확실한 대안을 받아내야 한다. 국민을 지키지 못한 정부를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헌법 제 10조에서는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할머님들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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