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 시조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신화의 현장에는 적막함만이 감돌아

▲ 혼인지마을 방문을 환영하는 삼성신화의 삼신인과 벽랑국 삼공주 모습의 인형이 보인다.

‘탐라’는 ‘섬나라’라는 뜻으로 한반도에 있었던 고대국가들과는 별개로 제주도에 존재했던 국가였다. 탐라는 고려에 복속되기 전까지 독자적으로 인정받던 국가였다. 이렇듯 제주는 개별적인 시조신화가 존재하며 흔히 국사책에서 배워왔던 한반도의 역사와는 다른 제주만의 역사가 존재해왔다. 그러나 탐라국에 대한 문헌과 자료가 많지 않는데다 관심 또한 저조해 이대로 탐라의 역사가 잊혀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탐라의 시초가 담긴 삼성신화 속 탐라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삼성신화 :탐라시조신화

그들의 옛 기록에 이르기를, 태곳적에는 사람과 물상도 없었는데, 세 신인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 제일 큰 사람이 양을나, 둘째가 고을나고 셋째는 부을나이다. 세 사람은 황량한 들판으로 다니면서 사냥을 했는데,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고 고기는 먹었다. 하루는 인을 찍어 봉한 나무 궤짝이 동쪽 바닷가에 닿는 것을 보고 좇아가서 열어 보니 그 궤짝 속에는 돌함이 들어 있었으며, 동시에 붉은 띠에 자주색 옷을 입은 사신이 따라왔다. 돌함을 열어 보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 씨앗이 나왔다.

그제야 사신이 “나는 벽랑국의 사신이오. 우리 임금이 세 따님을 낳아 놓고 말씀하시기를, ‘서해 복판에 있는 멧부리에 신의 아들 세 사람을 내려 보내 나라를 이룩하려고 하나 배필이 없느니라.’ 하면서 이에 나더러 세 따님을 모시고 가라고 하여 모시고 왔으니 그대들은 짝을 이루어 큰일을 성취하시오.”라고 한 다음 갑자기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세 사람이 나이 순서에 따라 장가를 들고, 샘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고장으로 가서 화살을 따라 각기 자리를 잡았다. 양을나가 사는 고장을 첫째 도읍, 고을나가 사는 고장을 둘째 도읍, 부을나가 사는 고장을 셋째 도읍이라고 하였다. 처음으로 오곡을 심고 망아지와 송아지도 길러서 날로 번창했다.

삼신인이 솟아났다는 모흥혈은 지금의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삼성혈로 지금도 구멍 세 개가 남아있다. 그리고 세 처녀가 닿은 동쪽 바닷가는 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라고 문헌이나 전설상에 나타나 있다. 온평리에는 세 처녀가 올라올 때 찍혔다는 말 발자국이 바닷가 바위에 남아 있으며, 또한 삼신인이 혼인하였다는 혼인지라는 못이 있다.<고려사>

▲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삼성혈. 삼을나(삼신인)가 솟아난 탐라국의 시조신화의 현장이다.

◇삼성혈 : 탐라국의 시조를 찾아서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10명 남짓한 가족과 혼자 온 관람객을 제외하고는 이곳을 찾은 이는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이곳으로 소풍을 왔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꽤 흐른지라 마치 처음 온 곳인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댔다. 하늘은 흐릿했고 울창한 나무는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비가 금방이라도 후두둑하고 쏟아질 것 같았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풀길을 걸으면 전시관이 나온다. 삼성신화와 신화 속 장소들에 대한 설명이 가득한 곳이었다. 쭉 더 가다보면 제사를 지내는 건물과 그 옆으로 전통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인다. 안에는 두 명의 아주머니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이 바로 삼성혈이다. 삼성혈은 시조 삼신인이 솟아난 곳인 만큼 탐라국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나온 장소가 실재함으로써 신화의 신빙성을 높임과 동시에 신비함을 더해준다. 삼성혈은 세 개의 구멍이 패어 있고 각 구멍들이 삼각형의 꼭짓점 위치에 배치돼 있다. 위쪽 구멍은 고을나, 왼쪽 구멍은 양을나, 오른쪽 구멍은 부을나가 솟아난 곳이라 전해진다.

1526년(중종 21) 이수동 목사가 구멍 주위에 직사각형의 돌들을 둘러놓고 혈 북쪽에 홍문과 혈비를 세웠다고 한다. 삼성혈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울타리 위에 올라가 휴대전화를 들었지만 여전히 구멍은 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입구로 나왔을 때 아파트와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홀로 나무들이 우거진 곳의 조선시대 식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묘했다. 찾는 이 없는 삼성혈, 이제 제주도가 돼 버린 탐라국의 흔적조차 사라져가는 듯 그렇게 잊혀가면서 신화 속의 장소로만 존재하는 듯 했다.

◇혼인지 : 벽랑국 삼공주와의 만남

두 번째로 향한 혼인지는 삼성혈보다 더욱 적막했다. 정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적막하고 쌀쌀한 와중에 이슬비가 내렸다. 연두색 잔디밭에 핀 새하얀 꽃들이 혼인지 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다른 갈래 길로 들어서면 삼신인과 벽랑국 삼공주의 신혼방인 신방굴이 나온다. 굴 입구로 들어가면 세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또한 삼성신화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삼공주추원사가 있다. 삼공주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곳이다. 삼성혈이 삼신인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혼인지는 삼공주의 제사를 위한 곳이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과 거미줄이 쳐져 있는 모습이 혼인지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전통혼례체험 프로그램이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고 있는 듯 했으나 과연 잘 진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방치돼 있는 듯한 혼인지를 나오며 삼신인과 삼공주 모습의 조형물과 ‘혼인지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사람 발길 끊긴 혼인지마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삼신인과 삼공주 표정이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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