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 ‘희망가’ 등을 불러 암울했던 한국 사회에 한 줄기 빛을 보여준 ‘로큰롤 할배’ 가수 한대수. 그가 한국에 정착한지 12년만에 다시 뉴욕으로 떠났다. 환갑에 얻은 아홉 살짜리 딸이 학교 공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기 때문이라 한다.

요즘 ‘포켓몬 고’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게임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개발사인 나이앤틱의 한국계 디자이너 데니스 황 아트총괄 이사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과천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도 한국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방식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라는 대하소설 3부작을 통해 민족과 이념문제를 깊이 천착하고 ‘정글만리’에서는 자본주의 생리를 예리하게 파헤친 노작가 조정래. 그가 이번엔 한국의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풀꽃도 꽃이다’라는 작품을 들고 나왔다. OECD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 매일 1.5명의 청소년이 성적과 왕따 문제로 죽어가는 데도 별다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소설가인 자신이라도 나서야 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사례는 모두 오늘날 한국의 교육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학교 교육, 특히 중등학교 교육에서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지배적인 이유는 우선 교과서가 지식 중심의 인지적 영역에 편중되어 있을 뿐, 전인교육에 필요한 기능적, 정의적 영역은 매우 소홀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교과서 내용과 구성 방식은 해당 교육과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이는 결국 교육과정의 문제에서 비롯되는데, 실제로 한국의 교육과정에 제시된 성취기준은 대부분 인지적인 것들이다.

그러면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균형 있게 바꾸면 한국 교육의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고부담 시험(high-stakes test)이라 할 수 있는 대수능은 중등학교의 교육내용과 교수-학습방법, 평가방식에까지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한국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동시에 개혁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러한 개혁 방안의 하나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IB교육과정은 초등(PYP), 중등(MYP), 중등후기(DP) 등 3개 교육과정으로 구성되며, 교과와 활동 간의 균형을 이루어 학생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돕는다. 학생들에게 지식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가지게 하며, 교과 통합적인 소논문을 작성하게 함으로써 대학에서 학문 탐구를 위한 능력을 미리 길러준다. 무엇보다 창의적 체험과 봉사활동을 통해 지구촌 사회의 일원으로 실제적인 문제 해결에 참여하며, 협동과 배려, 이타심을 신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래 동안 주입식 학습과 객관식 시험을 시행해 온 일본은 이미 전국 200여개 고등학교에 IB교육과정을 도입해 올해는 처음으로 일본어로 된 IB졸업시험을 치를 예정이며, 쓰꾸바 대학은 IB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을 위한 입시요강도 마련해 발표했다. 우리 대학에서도 지난 7월, ‘미래 사회와 IB국제교육과정’이라는 주제로 논의의 장을 가진 바 있으며,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있는 NLCS와 BHA에서는 이미 IB교육과정을 운영하여 좋은 교육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제주에서 먼저 IB교육과정을 도입ㆍ운영함으써 한국 교육의 적폐를 해소하는 단초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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