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역자 이재룡|민음사

사랑 이야기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돈키호테>부터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안나 카레니나>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우리들이 이런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사랑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연한 질문을 한 번 해보자.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사랑 이야기는 왜 계속 반복되고 있는가? 그것은 사랑 이야기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독자는, 그러니까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보다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에 더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때문에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어울리는 사랑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다.


반대로 사랑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본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둘시아네를 향한 돈키호테의 사랑을 통해 기사계급이 품고 있던 이상적인 사랑을 읽어내고,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을 통해 감상적 개인주의 시대의 실존의 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또 세계문학상 가장 매력적인 여성 중의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적인 사랑은 제정 러시아 시대 귀족사회의 결혼제도와 가치관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1929-)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 역시 마찬가지다.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인 이 소설은 토마시-테레자, 프란츠-사비나 등 두 쌍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동시에 20세기 말 실존에 대해 탐색을 벌이는 위대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쿤데라가 사랑 이야기 속에 담아낸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쿤데라는 데카르트와 더불어 시작된 이성의 역사에 비판을 가한다. 데카르트의 등장과 함께 신은 사라지고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으로 등극하였다.

그런데 근대의 끝자락에 이른 지금 그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유럽 인문정신의 위기를 선언한 후설에 따르면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에 의해 세계는 “단순히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탐구의 대상으로” 환원되었고 그 지평에서 “삶의 구체적인 세계”가 제거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식이 계속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의 바람과는 달리 인간은 세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단순한 사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의 망각”으로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쿤데라는 우리 시대를 인간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져버린 시대로 규정한다.

쿤데라에게 소설의 존재이유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탐구하여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인간을 지켜내는” 것이다. 쿤데라에 의하면 “모든 시대의 모든 소설은 자아의 수수께끼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카프카에게 근대란 인간이 길을 잃은 미로였으며, 이런 미로에서 인간에게 아직 어떤 가능성들이 남아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 카프카의 소설세계라고 한다면, 인간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존재로 전락해버린 시대에 실존의 문제를 탐색하는 것이 쿤데라의 소설세계이다.

쿤데라의 소설 중에서 우리 시대 인간존재의 모습을 가장 밀도 있게 성찰한 작품이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소설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시대에 서로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 두 쌍의 주인공 토마시-테레자와 프란츠-사비나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한 번 존재했다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우리들의 삶은 반복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을까? 진지하고 무겁게 사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가볍게 사는 것이 옳을까? 쿤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와해시키면서 가벼움과 무거움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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