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찾으려 글쓰기 시작해
‘일상’의 치매 보여주고자
아이들 성장통 글로 담고파

>> 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 10 > 임명실 작가

임명실 작가
임명실 작가

 

중문고등학교 3학년 교사인 임명실 작가는 아직 작가 호칭이 어색하다. 그가 펜을 잡은 건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후다. 아홉 오누이 낳아 기른 ‘오연옥 여사’의 흩어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한 결심이었다. 책 <우리의 기억을 드릴게요>에는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엄지 할망’과 ‘성산포 가디언즈’의 치매 극복기를 담았다. 그들 이야기는 TV 프로그램 <보물섬>과 <인간극장>에 방영되기도 했다.

아들 하나에 딸 여덟. 언제부턴가 임 작가의 어머니는 아홉 오누이를 낳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임 작가는 “이전에 어머니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목적으로 수필을 썼었다. 어머니께 글을 읽어드리면 “아, 내가 그랬었지” 하고 기억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어쩌면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어머니와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쓰기 시작했다”며 “어머니의 기억이 사라진 게 아니고 이 종이 안에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교직생활과 글쓰기의 병행에 대해 묻자 그는 “본격적으로 책을 내려고 쓴 글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이라 오히려 꺼내기 쉬웠다. 우리 이야기이기에 풀어내기도 수월했다”고 답했다.

담담하게 써 내린 ‘성산포 가디언즈’ 이야기는 심상치 않다. 아홉 오누이부터 손주들까지 온 식구가 어머니 모시기에 나선다. 각자의 일로 바쁘더라도 당번제로 일을 분담하면 끄떡없다. 어린 시절 아홉이기에 겪어야 했던 아픔을 이겨낸 까닭일까. 아홉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 모를 이야기다.

책 <우리의 기억을 드릴게요>의 필자는 임 작가이지만 화자로서는 그의 딸 이하정양이 등장한다. 하정양은 책의 삽화를 그려 이름을 함께 올리기도 했다.

“딸이 글 쓰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았지만, 평소 내게 던졌던 “엄마 잘하고 있어”, “할머니에게 좀 더 신경 써 줘” 등의 말들이 가슴에 남았다. 하정이와 할머니의 삶을 많이 공유해왔음을 느꼈다. 또 그를 통해 매체 속 ‘사건’의 치매가 아닌 ‘일상’의 치매를 보여주고자 했다. 분명 힘들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헤쳐 나가는 치매 말이다.”

또한 임 작가는 “독자분들이 편안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 치매를 미화시키진 않았는지 걱정된다. 어머니는 가끔 욕도 하시고 떼를 쓰시기도 한다. 우리가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밝게라도 표현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누군가의 가디언즈를 자처할 이들에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어르신을 모시려면 온 가족이 총동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물론 막연한 희망 사항일 수 있다. 가정사에 따라 어르신을 요양시설로 보내기도 해야겠지만 어르신들은 가족과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어르신들이 가장 안전한 곳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치매 환자라고 해서 환자로 바라볼 게 아니라 치매라는 생소한 세상에 사는,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 맞출 수 있는 부분은 맞춰나가면 된다”며 치매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임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어쩌다 시작한 일이지만 한 번 글을 쓰고 나니까 욕심이 생긴다. 그다음으로는 교직에 몸담으며 만났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픈 마음이다.”

우연히 공고를 보고 시작한 보건 교사에서 한 교실의 담임을 맡는 지금까지 어느덧 30년의 세월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의 성장을 지켜봤다.

임 작가는 “아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배움을 얻는다.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거칠어 보이지만 따뜻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여리다. 그 친구들에게는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 있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부분”이라며 조심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소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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