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기념 행사 일환으로 말모이 축제 개최
훈민정음 창제 당시 가장 유사한 언어 ‘제주어’
“제주어 박물관 설립 통해 제주어 보전할 수 있어”

제주시내에 위치한 상가에서 제주 방언 간판을 걸고 있다.
제주시내에 위치한 상가에서 제주 방언 간판을 걸고 있다.
9월 21일 대학로에서 말모이 축제 제주 부문 이 진행 중이다.
9월 21일 대학로에서 말모이 축제 제주 부문 이 진행 중이다.

 

10월 9일은 제576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훈민정음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한글날의 시초는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다. 1928년 ‘한글날’으로 개칭됐으며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고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됐다.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이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한글날을 기념해 전국각지에서는 문학 공모전을 비롯해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의 일환으로 우리말의 소중함을 시민과 함께 즐기는 대면 체험형 행사의 일환으로 ‘말모이 축제’도 운영됐다. 말모이 축제는 제주도·경상도·이북·전라도·충청도·경기도·강원도 등 한반도 전역의 언어, 지리, 문화 특색을 담은 작품들로 이루어진 우리말 축제이다. 각 지역의 극단 예술 단체가 참여한 연극제와 7개 지역별 사투리 체험 등 우리말 체험을 위한 행사가 다채롭게 구성됐다. 

개막작은 제주도 부문 ‘제주 극단 줌’의 <살암시난>으로 운영됐다. <살암시난>은 4ㆍ3사건의 기억을 좇는 이야기로 구성됐다. 4ㆍ3사건때 정방폭포에서 부모와 언니가 학살당하고 시신이 폭포를 떠내려간 모습을 지켜보며 그 충격에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살암시난>의 연출을 맡은 강재림씨는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수많은 4ㆍ3 희생자들의 피가 서려있음을 알지 못한다”며 “불과 70여 년밖에 되지 않은 아픈 역사를 한 편의 연극으로 되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나 소통과 공감의 장을 통해 잠시나마 느껴보는 계를 마련해보았다”고 말했다.

극단 줌은 <살암시난>이란 작품을 통해 제주 방언과 4ㆍ3이라는 제주의 아픔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연극을 관람한 강미경씨는 “한글날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연극제에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었다. 한글날, 제주어, 4ㆍ3이 모두 연결됐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한글날을 기념해 사라져가는 제주어와 잊혀져가는 4ㆍ3 역사를 다시 되살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특히나 요즘 제주 방언을 쓰는 젊은 세대가 거의 없어 더 소중한 무대라 생각한다. 한글이 생겼음을 기념하는 국경일이지만 사라져가는 제주어가 있다는 것이 대비되고 안타까운 현실인 것 같다”고 전했다. 

제주어는 훈민정음과 가장 가까운 한글로 조선 초기 한글이 반포됐을 때의 형태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다른 지역에서 사라진 아래아(·) 등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의 고유한 형태가 남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도의 사투리가 아닌 고유의 언어로 ‘제주어’라 주장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하지만 제주어는 현재 사라질 수도 있는 언어로 평가받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슨 교수에 따르면 향후 100년 안에 현존 언어 절반 이상이 자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제주 방언도 그중 하나다. 제주어보전회에 따르면 도민의 1~2%만이 제주어를 제대로 쓴다. 이마저도 대부분 8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2010년 유네스코에서는 제주어를 소멸 직전에 해당하는 ‘소멸 위기 언어 4단계’로 지정했다.

조서진(경영학과 3)씨는 “사실 대학교를 다니며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않았다. 기본적인 제주도 말투는 있지만 표준어를 대체하는 사투리는 이제 거의 사라지는 것 같다”며 “소멸 위기 언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 젊은 층이 표준어를 많이 구사한다는 것은 실감하고 있었으나 직접적인 통계를 들으니 와닿는다”고 전했다.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제주시 고산동로부터 제주종합경기장 사거리 구간 상가에는 제주어 문양이 들어간 수많은 간판을 걸었다. 간판에는 ‘혼저 왕 밥 먹읍서(어서와서 밥 먹으세요)’, ‘하영들 옵서(많이 오세요)’ 등 다양한 제주어가 담겨있다. 이뿐만 아니라 제주시 곳곳에서 제주어가 적힌 간판을 상가에 걸었다. 해당 간판들은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제주 이야기를 담은 신성로 간판 개선사업’을 통해 제작됐다.

조씨는 “제주 시청 부근에서 돌아다니다보면 제주어 간판을 한 식당이 몇군데 보인다. 많은 분들이 제주어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제주도 사투리를 잘 쓰진 않는다. 제주어 보전을 위해 각기 다른 노력들이 이뤄지는 만큼 젊은 세대로 그 노력에 동참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2018을 시작으로 2024년 하반기까지 ‘제주어 대사전’의 발간을 위해 노력 중이다. ‘제주어 대사전’에는 2009년 첫 발간된 ‘제주어사전’의 자료를 수정, 보완하고 사용 예시를 추가해 관용어와 속담 등 어휘 4만 개 이상을 담을 예정이다. 사진과 삽화 등 보조자료를 마련해 이용자의 이해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사전편찬을 계획한다. 제주어 어휘를 전자 자료화해 종이사전이 만들어진 이후 웹 사전 발간을 위한 토대도 마련 중이다. 

강영봉 제주어연구소장은 “13세 전후로 제주어를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유아 및 청소년 교육을 확대하고 노출의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며 “다양성을 지닌 제주어를 보존하는 건 제주의 문화와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제주어연구소(이하 제주어연구소)는 제주어 보전을 위해 조사ㆍ연구를 강화하고, 제주어가 유네스코의 소멸 위기 언어로 분류된 만큼 각국의 언어재단 및 연구 기관과의 교류를 통하여 제주어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쓰고 있다. 더불어 제주어 교육과 시민 강좌를 개최하는 등 제주어 보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 중이다. 

한글날을 맞이해 제주어연구소는 ‘2022 구술로 배우는 제주어’ 강좌를 연다. 이번 강좌는 실제 제주어 구술을 들으며 그 속에 담긴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제주어 강좌다. 10월 19일부터 11월 16일까지 매주 수, 금요일 교육협동조합 사람에서 강좌를 진행한다. 신청은 10월 5일부터 선착순으로 받는다. 

일각에서는 제주어 박물관 설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작년 강철남 제주도의원의 제주어 박물관 설립 주장을 시작으로 일부 도민들은 제주어가 유네스코에서 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제주어 박물관 설립 계획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주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인 이 모씨는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표준어를 구사한다. 당연하게도 고연령층을 제외하면 제주어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 제주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 현장에 있으면 제주어가 정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주도 자체에서 제주어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렸으면 좋겠다. 국립제주박물관을 가면 제주어 음성 자동 안내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하지만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어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제주를 소개하는 박물관일 뿐이다. 제주어를 위한 박물관이 설립된다면 제주어 보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제주어는 아픈 역사 속에서도 지킨 하나의 언어이다. 4ㆍ3 사건 당시 제주인인 것을 들켜 피해를 당할까 제주어를 기피하는 현상이 도민들 사이에서 펴졌다. 제주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에게 수업 중에는 반드시 표준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이러한 아픈 역사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현재까지 존재하는 제주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한글날을 기념하는 가운데 사라져가는 제주어의 문화와 역사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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