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우 취재보도부장
고지우 취재보도부장

“추락, 오늘은 당신이 될 수 있습니다.”

집으로 향하던 중 마주친 건설 현장의 현수막 문구다. 귀갓길 내내 이 문구를 보며 출근하는 노동자는 어떤 마음일까, 생각했다.

머지않아 의문이 들었다. 산재사고는 온전히 개인의 부주의일까? 왜 직장에서는 그들의 퇴근을 보장해주지 않을까?

고용노동부가 내건 이 문구는 왜인지 경고보다는 협박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렸을 적 엄하신 선생님께 들었던 “이 문제를 틀리면 집에 못 가”와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왔다.

비유하기에 적절치 않은 사례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는 전통처럼 이어져 온 사회 구조를 보여준다. 여기서 ‘사회 구조’는 사건ㆍ사고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집중되는 그런 사회 구조를 말한다.

나는 ‘집에 갈 수 없다’는 두려움에 문제를 풀 수 없었고, 교무실의 불이 꺼질 때까지도 교실에 남아있어야 했다. 겨우 초등학생이었던 내게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형벌이라기에 딱히 잘못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실수하지 않아야만, 조심해야만 타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그런 세상이다.

지난 9월 22일 제주대 기숙사 철거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도내 처음 적용됐다. 노동청이 공사 총괄 책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ㆍ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물 굴뚝 철거가 작업계획서와는 다르게 진행됐고, 시공사는 작업 계획을 세울  당시 굴뚝 등 취약부위에 대한 사전 건축 조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더불어 목숨을 잃은 굴착기 기사는 시공사로부터 작업 계획을 제대로 통지받지 못했고, 사고 당시 현장소장과 공사책임자는 공사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즉, 내막이 존재한 사고였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이를 처음 인정했다.

이제껏 뉴스에서 보도된 사고 피해자들의 원통함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조금 더 빨리 인정했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산재 노동자만이 아니다. 스토킹 범죄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여성, 나아가 아직 방류되지 못한 마지막 남방큰돌고래까지. 신분과 종을 막론하고서 너무나 많다.

모두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 꼭 사전적 정의의 집이 아니더라도 내가 돌아가야 할 보금자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의 안전한 귀가에 대해 학교도, 직장도, 나라도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 각 조직은 보장해야 할 뿐이다.

집을 험난한 여정의 종착지로 가두지 않는, ‘무사 귀가’할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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