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 팬데믹 시기 응급병동 일상 담아
추억 깃든 제주의 자연ㆍ역사ㆍ문화 녹여내
따뜻한 세상 위해 사회에 목소리 전하고파

>> 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 11 > 윤행순 작가

윤행순 작가
윤행순 작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코로나19 전염이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 쉴 틈 없이 의료현장으로 향했던 이들의 땀이 맺은 결실이다.

30년간 환자 곁을 지켜온 전직 수간호사 윤행순 작가가 그 일상을 첫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에 담았다. 바쁜 나날 속에서도 글을 놓지 않으며 수필집 <하얀 스웨터>를 발간한 그는 명예퇴직 후 본격적인 독자 마음 치유하기에 나선다. 제주도 서귀포의료원 출신의 윤 작가는 환자 그리고 독자와 ‘동병상련’한다.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의 1부 <동병상련의 등불>에는 간호일지로써 형상화한 현장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코로나19가 막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응급실에서 근무했다. 신종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없어 지침이 계속 변경되니 우왕좌왕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24시간 내내 응급실 생각뿐이었다.”

의료인은 팬데믹 이래 가장 상반된 두 삶을 살았대도 과언이 아니다. 직업상 누구보다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했지만, 일상에서는 또 다른 격리의 대상이었다. 딸의 출산을 함께해주지 못한 일은 지금도 그의 가슴에 응어리져 남아있다.

그는 “간호사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입원자로서 병원에 있을 때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간호사를 보며 참 안타까웠다. 의료인에 대한 고마움과 병을 이기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를 함께 드높이고팠다”며 간호받지 못하는 간호사의 삶을 이야기했다.

고된 하루 끝에 퇴근한 윤 작가는 집에 오면 밥하는 것도 잊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글쓰기는 그가 자신을 간호하는 수단이다. “물론 글쓰기에 좌절을 맛보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동시에 불편했던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평소 안 써지던 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잘 써진다. 이제는 글을 안 쓰면 괜히 온몸이 쑤시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한편 윤 작가는 치열하게 사는 동안 돌봐주지 못한 가족에 미안하다. 그는 “늘 글쓰기가 1순위였다. 네 식구가 모여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지금이야 퇴직하고 남편과 1박 2일 여행도 떠나지만, 단란한 일반 가정의 추억이 많지 않다. 살림에도 소질이 없다”며 앞만 보며 달려온 지난날을 회개했다.

여유를 되찾은 삶에서 남편과 손잡고 오른 안세미오름을 포함한 제주 곳곳의 경관이 시집에도 등장한다. 성세기해변, 우도 봄 바다, 형제섬 등 모두 윤 작가가 직접 눈에 담은 장소다.

제주도 전체가 동창으로 가득 찼다는 그는 “보통 제주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제주시 근방만을, 서귀포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서귀포 근방만 안다. 나는 아버지의 일로 자주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고, 동서를 불문한 덕분인지 이곳저곳에 추억이 많다. 시에도 나와 있듯이 중문, 모슬포, 성산포, 우도 등을 거쳐 갔다”며 유서 깊은 제주살이를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제주의 자연보다도 사람에 관한 인간적인 글을 많이 썼었다. 앞으로는 글을 통해 자연뿐 아니라 제주의 역사부터 문화까지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고자 한다. 그런 의무감이 든다.”

윤 작가는 ‘쓴다’는 일을 삼시세끼에 비유한다. 작가에게 글이란 습관이자 필수적인 존재다. 써야 한다는 불가항력적 끌림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단순히 일기처럼 끄적이는 게 아니라 사회에 전하는 말들을 쓰고 싶다. 소외된 자들의 더 많은 목소리를 담기 위해 쓰고, 결국 세상이 한결 따뜻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글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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