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 고봉선 / 담앤북스 / 2022

제주 BOOK카페  < 21 >

서점 우편함을 열어보니 책 한 권이 있다. 이제 사람은 없고 책이 도착했다. 고(故) 고봉선 작가의 책 『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이다. 서점 가운데 매대에 놓았다가 제주 관련 책을 모아놓은 책꽂이 옆 동그란 탁자 위에 놓았다. 책은 마치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차마 꺼내서 읽어보기가 망설여졌다.

책방을 운영하면 기자나 책방 관련 책을 내려는 사람이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사전에 조사를 철저히 하는 사람과 반대로 사전 조사 없이 방문하는 경우. 결과적으로는 미리 알고 온 사람의 글이 내용이 풍부한데, 고봉선 작가는 전자에 해당된다. 

고봉선 작가가 서점 취재를 하겠다며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서점 운영에 지쳐있는 시기였다. 서점을 정리할 생각도 품고 있어서 인터뷰를 거절하려다 약속을 잡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은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활기로 가득했다. 

고봉선 작가의 인터뷰 스타일은 시시콜콜 묻고 기록하는 점이다. 서점 운영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부분까지도 미주알고주알 캐물었다. 고봉선 작가는 인터뷰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내게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묻고 들었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 책이 나오기도 전에 황망한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도 이미 지난 후였다. 저녁에 동네 산책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너무 자주 전화가 와서 몇 번 전화를 피하기도 했던 게 후회됐다. 

그가 서점에 있는 화분들을 사진 찍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화분들은 서점 건물 주인 할머니가 정성 들여 가꾸는 화분들이었다. “화분이 이렇게 정갈하게 있는 것을 보면 이 건물 주인 할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겠네요.” 서점 모퉁이 작은 곳에도 시선을 두는 그를 보면 그가 원래 시를 썼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됐다. 그의 책에 있는 정갈한 문장들을 보면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제주도의 여러 서점을 돌며 쓴 책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그 사이 내가 운영하는 서점은 옆 동네로 옮겨서 부득이 책에는 그때의 화분 사진을 싣지 못했다. 고봉선의 책 에는 그가 정성 들여 가꾼 화분 같은 글들이 가득하다. 그러니 이 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빛이 바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푸르게 자라는 나무가 될 것이다.

그의 글은 ‘제주의 소리’에 연재됐다.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신문사에서 그의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그가 하늘나라에서 이 책을 보고는 밝게 웃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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