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을 안고 과제를 피하지 않는 것이 중요
적대감과 반감 아닌 상호 신뢰로 아픔 치유해야

 이정원                           사회학 박사                   언론홍보학과 98학번
 이정원                           사회학 박사                   언론홍보학과 98학번

It’s sad so sad / It’s a sad sad situation / And it’s getting more and more absurd / 

It’s sad so sad / Why can’t we talk it over / Oh it seems to me / That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살아 있는 전설’ 싱어송 라이터 엘튼 존이 1976년 발매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가사 일부다.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참사’ 앞에서 시민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일 것이다. 슬픈 건 노래처럼 희생자들을 바라보며 이야기 나눌 수 없는 지금이다.

슬프고 너무 슬픈 상황이다. 슬픔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더 큰 비통함이 치유와 회복의 길을 가로막는다.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무책임과 구조적 문제들이 쏟아진다. ‘국가는 어디 가고, 그들은 어디 있는가’ 계속 외친다. 응답은 들리지 않는다.

참사 이후 진심의 사과와 책임 약속을 바랐다. 바람은 실망으로 돌아왔다. 대통령은 참사 6일만에 공식 사과했다. 

뒤늦은 사과는 또 있었다. SPC그룹 평택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 시민들의 분노와 불매운동에도 책임자는 나오지 않았다. SPC그룹 회장은 사고 6일이 지나서야 공식 사과했다. 이쯤되면 <참사 6일 후 책임자 사과>는 ‘과학’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엘튼 존의 노래처럼 인간은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무거운 정치ㆍ사회ㆍ자본의 책임에 둘러싸인 누군가는 ‘미안하다’ 말을 자신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처벌이라고 규정하는 건 아닐까. 

‘미안하다’고 고백하면 오랫동안 쌓아 올린 자본과 권력의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참사와 함께 휘몰아치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여 정말 해야 할 일을 회피하려 했던 건 아닐까? 

기시미 이치로는 책 <불안의 철학>에서 ‘불안’을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한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이치로는 ‘불안해져서 결정 내리기를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고 불안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치로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나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결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에 휩싸이면 아예 결과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 마음의 결과는 해야 할 과제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사과를 늦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둔감함이다. 고전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대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둔감해야 한다고 했다. 책 <모더니티 읽기>에서 짐멜은 ‘(대도시는) 사람과 사물이 몰려 있기 때문에 개인들이 고도의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의 결과가 둔감함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둔감함은 자기 보존을 위한 필사적인 분투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과 관계에서 속내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 치열한 자본과 권력 경쟁의 장. 속내를 들키는 건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한국 남자들은 성장 과정에서 ‘울지 마라, 약해지지 마라’를 명령처럼 듣는다. ‘미안하다’는 함께 울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 있어야 진심이 된다. 잘못을 인정하고 속내를 솔직히 끄집어내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신이 약하다 혹은 경쟁의 패배로 생각하면 사과의 행동은 자존심을 굽혀야 하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 된다. 짐멜은 ‘무수한 사람들과 쉴 새 없는 만남에 매번 내적 반응을 보여야 한다면 사람들은 내적으로 완전히 해체돼 상상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속내를 감추는 태도에는 은밀한 반감과 상호 적대감, 반발심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상호 적대감과 반감이 아닌 신뢰로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 미안함을 안고 과제를 피하지 않는 것, 둔감함을 걷어내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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