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를 통해 본 일본의 모습

▲ 하카타 역에서 바라본 일본 시내의 모습

본지 기자 일본 후쿠오카 현지 해외 취재
일본, 역사에 남긴 과오는 뉘우치지 않아


일본은 크게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인 4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기자는 후쿠오카를 방문했다. 후쿠오카는 일본서 세 번째로 큰 섬이며 규슈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항로도 잘 개척 돼있어 인천, 대구, 부산 등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 또한 부산에서 배를 통해서도 후쿠오카를 방문 할 수 있다. 쉽게 방문할 수 있다보니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그래서였을까. 후쿠오카 공항을 비롯, 시내에는 한국말로 표지판이 적혀 있고 식당에도 한글판 메뉴가 존재했다. 한국인에 대한 편의가 잘 갖춰져 있다. 

◇훌륭한 시민의식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후 기자가 가장 먼저 간 곳은 하카타. 이곳은 많은 관청기업이 밀집해 있고 교통의 요충지다. 후쿠오카 공항을 통해 규슈로 들어왔다면 기차 여행의 시작점은 하타카 역이다. 규슈 전역으로 가는 대부분의 기차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규슈에서 오사카까지 가는 신칸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대형 쇼핑몰들이 역과 연결돼 있는데 주변에는 복합 문화 공간과 호텔 등이 있다.

일본을 처음 방문해 본 기자는 다소 놀랐다. 일본의 거리는 한국과는 너무도 달랐다. 한국에서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담배를 피는 경우가 흔한데, 일본사람들은 한국인들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가 없었고 흡연도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피웠다. 또 다른 차이는 공공질서였다. 한국인들은 버스나 지하철이 오면 무질서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인들은 가지런히 줄을 서면서 기다렸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노약자나 어린이가 있으면 먼저 지나가라고 배려를 해줬다. 사소한 잘못을 하면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을 항상 외쳤고 식당의 종업원들은 마치 자신의 가족을 맞는 것처럼 ‘이럇사이마세(어서요세요)’,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를 연거푸 반복했다. 이런 행동들을 보니 왜 사람들이 일본을 자주 방문하는지 느껴졌다.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인들에 비해 그들에게는 알 수 없는 여유도 느껴졌다.

◇일본의 신사문화

시내를 벗어나 사람들이 거주하는 조용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곳곳마다 신사가 보였다. 일본의 신도 신앙에 의거해서 신들을 제사 지내기 위해서 세워진 건물인 신사는 마을을 지날때 마다 하나씩 있었다. 신사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야스쿠니신사였다. 보통의 일본신사라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기에 상관없지만 야스쿠니 신사 같은 경우 태평양전쟁당시 죽은 일본군의 영령을 기리기위해 세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렇기에 일제의 식민지 생활을 했던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분노감이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고코쿠 신사였다. 신사 앞에는 ‘도리’라는 문이 있었다. 그 문을 통과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외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색 깃발들이 여러개 꽃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는 일반적인 신사였지만 후에 전쟁당시 지역 출신 전사자의 영령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변경됐다고 한다. 신사를 한바퀴 둘러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방문한 신사는 구시다신사였다. 헤이안시대인 757년에 세워진 신사로 불로장생과 상업 번성의 신을 봉안하고 있었다. 1000년의 은행나무가 있으며 후쿠오카의 여름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오이야마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신사내부에는 소원을 적는 곳도 있었고 일본사람들은 종을 치며 참배를 하기도 했다. 고코쿠신사와는 다르게 구시다 신사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었다. 다소 유명한 신사인 것 같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알고보니 이곳은 일본 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데 사용한 칼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외부인에게 공개는 하지 않고 있지만 그런 칼이 아직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불쾌함이 들었다. 왜 아직까지 이런 칼을 보관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들었다.

▲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을 보관중인 구시다 신사


◇신칸센을 타고 고쿠라역으로

신사를 구경한 후 다시 하카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시로 이동하기 위해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표를 끊는 모든 과정이 한국어로 돼있어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안내방송은 모두 일본어였다. 그렇기에 움직이는데 다소 시간이 지체됐고 길을 헤메기 시작했다. 다행히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신칸센에 탑승했다. 신칸센은 한국의 KTX와 비슷한데 다소 요금이 비싸긴 했지만 그 속도는 엄청났다.  일반열차를 타고 가면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를 신칸센은 단 17분만에 갔다. 고쿠라역에서 하차한 기자는 기타큐슈에 있는 고쿠라성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가는 길에는 일본의 전통시장이 있었다. 잠시 구경할겸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해산물과 육류 채소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장을 벗어나 2km 정도를 걸었다. 그리고 고쿠라성에 도착했다. 고쿠라 성은 엄청난 자태를 뽐냈다. 1602년 호소카와 다다오키 영주에 의해 세워진 성으로 중국, 한국, 유럽의 성을 융합시킨 구조의 성이다. 1866년 소실된 성은 현재는 1959년 재건된 천수각만 남아 있었다. 책에서 보던 일본의 전통 성의 모습은 아주 웅장했던 옛 성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성 바로 옆에는 고쿠라 정원도 있는데 나무가 우거진 곳에 연못이 하나 있는 모습이 마음을 편안히 해주기 안성맞춤이었다.

관람을 마친 후 기차를 타고 모지코 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며 주변을 돌아봤다. 규슈 최북단에 있는 이곳에서혼슈에 있는 시모노세키가 보였다. 또한 혼슈와 규슈를 연결하는 다리도 볼 수 있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과거 한반도를 식민지배 했던 나라이기에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먼 곳이다. 기자 또한 일본 땅을 밟기 전까지는 상당히 부담이 많이 됐다. 하지만 일본거리를 다니면서 본 일본인들의 모습은 그동안의 편견을 산산조각 냈다. 일본인들의 행동은 우리의 행동과는 비교됐다. 일본여행중 기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개를 끄덕였고 감탄했다. 일본이 왜 선진국이며 많은 사람들이 왜 그들의 모습에 반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 여러 부분에서 일본을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여유와 선진의식은 아직 따라 가려면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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