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지키던 돌하르방 47기 문화재 인정
잊혔던 돌하르방 가치 되찾아야
획일화한 관광상품… 많은 연구 필요

제주목 동문 어귀에 서 있는 제주대학교 박물관 소장 돌하르방
제주목 동문 어귀에 서 있는 제주대학교 박물관 소장 돌하르방
조상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한 동자석은 제주의 무덤가에 한 쌍으로 세워졌다
조상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한 동자석은 제주의 무덤가에 한 쌍으로 세워졌다

“아들 낳게 해주세요…” 속설 믿고 무심코 문지른 코의 주인이 알고 보니 도지정 문화재였다? 

아라캠퍼스 정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돌하르방 4기를 만날 수 있다. 제주 성문을 지키던 이른바 ‘명품’ 돌하르방이다. 우리가 간과해온 돌 문화유산의 진가를 제주대학교 박물관 강은실 학예연구사에게 물었다.

돌하르방, 넌 누게?

제주대학교 박물관 소장유물 도록에 따르면 돌하르방은 육지에서 유행했던 돌장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남도의 돌장승이 제주의 돌챙이를 만나 제주도식으로 거듭난 것이다. 제작연대는 1754년(영조 30년)경으로 추정된다.

돌하르방은 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성문 입구에 세워졌다. 지금처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본래 명칭은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였으나 아이들 사이에서 ‘돌 하르방’(‘할아버지’의 제주도 방언)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우리에게까지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일제강점기엔 돌덩이에 불과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총 47기다. 성문에 모여있었던 돌하르방들은 이제 제주공항, 관덕정, 제주KBS,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볼 수 있다. 강은실 연구사는 “지금은 오현단 남쪽에 성 일부가 복원돼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 돌들을 바다에 매립하고, 집 짓는 데 쓰고, 도로 개편하는 데 사용해 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까지 사라지자 문을 지키던 돌하르방도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라며 돌하르방의 이동 경위를 설명했다.

강 연구사는 “성을 지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원래 48기였다. 1기는 언제 없어졌는지 드러난 바가 없다. 일제강점기 때 배에 실은 돌하르방이 바다에 떨어졌다거나 무덤에 묻혀있다는 등 여러 추측이 오가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당시 돌하르방의 가치는 ‘돌덩이’에서 크게 지나지 않았다.

강 연구사는 이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되며 서울로 옮겨 간 돌하르방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전국의 장승과 목석들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을 설립하며 제주도에 돌하르방 기증을 요청했고, 이는 너무 단순히 허가됐다”며 “그때가 60년대였다. 문화재 지정 이전에는 돌하르방이 길에 세워진 돌 조각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더 빨리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더라면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돌하르방에 미안한 마음이다.

돌하르방 제자리 찾기 운동

한편 돌하르방을 제자리에 돌려보내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제주 돌 문화가 세계 유산으로 지녔음에도 관리 및 보전 체계는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제주도와 제주시, 그리고 민간 단체까지 힘 합쳐 돌하르방 제자리 찾기 운동에 나섰다.

강 연구사는 그 뜻에 “우리는 길거리에 떠돌던 돌하르방을 잠시 가져왔을 뿐, 주인이 아니다”라고 공감하면서도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다만 돌하르방을 동문ㆍ남문ㆍ서문에 되돌릴 여건이 되지 않는 한 ‘제자리’가 아님은 마찬가지”라며 “돌하르방을 보기 위해 한곳에 모이지 않고도 각자의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현 상황으로서는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석상인 돌하르방을 보존하기 위해 실내에 들여도 되는가를 두고서도 한동안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학술회나 간담회가 적극적으로 개최되는 것으로 보아 돌하르방에 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형, 어떻게 다를까

강 연구사는 “돌하르방 원형과 모조품을 한눈에 구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관리받기 때문에 모조품과 섞일 일은 없다”며 “안타까운 건 관광 상품화한 돌하르방이다. 표정도 다 다른데 관광상품들은 하나 같이 일반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돌하르방의 형상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만들었다. 연구가 더 이뤄졌더라면 기계적으로 찍어낸다 한들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본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주목의 돌하르방(187cm)은 정의현과 대정현의 돌하르방(각각 141cm, 134cm)보다 크고, 얼굴 생김새도 다르다. 강 연구사는 “인건비며 제작비며 돌하르방에 공을 들이려면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 제주목이 제주도청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부분”이라며 돌하르방 외형에 설킨 이야기를 공유했다.

도민도 잘 모른다… 우리는 왜 몰랐나

관광 활성화로 돌하르방이 상품화한 탓도 있지만, ‘우리 것’을 향한 적은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대학교 박물관만 해도 주 방문자층은 학외 손님들이다. 강 연구사는 “우리 학교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기본적으로 박물관에 들르신다. 칭찬도 많이 해주셔서 자부심도 있지만, 그에 비교해 낮은 학내 방문율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사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제주대학교 박물관으로 막 옮겨왔을 때 로망이 있었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도민 대상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진행했었다. 지원자 모집 당일 오전부터 접수가 마감되기도 했다. 기대에 부풀어 학생 대상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지원자가 두어 명밖에 없었다. 정말 놀랐다. 조금씩 문화 답사 등의 사업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학생모집이 어렵다”며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털어놓았다.

또한 “학생들의 시간을 많이 빼앗지 않는 선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작년에 서포터즈 1기를 모집했다. 학생들이 직접 문화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홍보했다.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자연스레 공부도 되고. 지난 활동을 기반 삼아서 4월쯤에 2기를 모집하려고 한다”며 학생이 주체 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물관에 놀러 오세요

박물관은 제주의 바다ㆍ땅ㆍ사람ㆍ민속을 주제로 4개의 상설전시실을 운영한다. 약 600여 점의 유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태를 뽐낸다. 박물관 야외 전시에서 돌하르방을 만났다면 내부 전시에서는 ‘조천석’, ‘돌코냉이’, ‘동자석’ 등 색다른 석상들을 만날 수 있다. 섬이 가진 자연에 어우러져 제주 사람들의 의식주와 생업은 물론 가족과 마을의 안녕, 풍요를 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돌 문화를 두 눈 가득 담아 보자.

강 연구사는 “무관심을 운운할 때 학생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학생들이 추운 날 버스를 기다린다고 내부로 들어올 때가 있는데 썰렁하고 딱딱한 분위기에 편히 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박물관이 관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재구성할 예정”이라며 다시 태어날 박물관을 기대했다.

중요한 건 ‘알아가겠다’는 마음

강 연구사는 “박물관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지식 창구로서 박물관을 활용했으면 좋겠다. 민속 분야 교양 강좌로 박물관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탐방을 오면 박물관에 관해 설명도 하고, 의류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전통 도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전문성을 높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원들이 많으니 박물관을 찾아주길 바란다”며 “하물며 리포트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해도 좋다”고 전했다.

용담캠퍼스부터 아라캠퍼스까지. 학생들이 바삐 움직이는 동안 돌하르방은 묵묵히 세월의 흐름을 지켜봤다. 등굣길에 돌하르방을 마주친다면 오랜 시간 수고 많았다고 인사 한번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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