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가 차별이 되는 문제를 눈감는다면 그것은 위선
학문의 공동체라고 한다면 함께 이 문제 논의해야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국어국문학과 91학번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국어국문학과 91학번

6년 전이다. 30대 대학 강사인 김만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라는 책을 펴냈다. 시간강사가 처한 고용 불안과 저임금 지식 노동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당시만 해도 시간강사는 직장 건강보험도 교원 지위도 적용되지 않았다. 대학원생을 포함해 대학 사회의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이 발표된 지도 벌써 6년이 넘었다. 그 사이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보장하고 1년 이상 임용, 3년까지 재임용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일명 강사법 개정으로 강사의 교원 지위가 보장되었지만 따져보면 차별은 여전하다. 방학 중 임금이 지급된다고는 하지만 방학 22주 중 임금을 지급하는 기간이 4주에 불과하다. 

대학 강사의 고용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정작 강사법 개정이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들이 재정부담을 이유로 강사 채용 대신 겸임, 초빙 교수 등 ‘비전임 교원’ 채용을 늘렸다. 대학 전임 교수들의 시수 부담은 늘어나고 강사들의 고용과 임금은 더욱 열악해졌다. 강의와 연구의 질도, 강사들의 고용불안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강사들이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교원의 지위가 법적으로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학사 운영과 관련한 논의에서 강사들은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제도가 아닌 전임 교원의 선의에 기대야 되는 구조로는 차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고용불안만 문제가 아니다. 임금수준도 사정을 들여다보면 부끄러울 정도다. 대학에서 10년 이상 강사로 재직했다고 해도 여전히 방학 때만 되면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각하게 대리운전을 고민했다는 강사도 있다. 강사법 개정으로 6학점 이상 강의를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강사들의 처우는 연소득 기준으로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 정도다.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부문에 올랐던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는 2022년 4월 연세대학을 상대로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 등 5000만원을 돌려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의 소송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정 작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사는 대학판 카스트 제도의 말단에 있다고 말했다. 3년 고용보장을 골자로 한 강사법의 취지는 3년이 되면 강사를 해고하라는 것이 아니다. 3년 후에도 계속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용 연장의 방법이 대학에 따라서는 공개채용과 면접, 발표 등을 거치고 있다. 동일한 학술, 강의 노동을 하는데도 전임과 비전임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간강사로는 도저히 생계가 해결되지 않아 배달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병철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시간강사입니다만 배민합니다>라는 책에서 강사의 불안한 고용과 처우에 대해 진솔하게 밝힌 바 있다. 그는 강사를 하면서 월 20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는 생계를 이을 수 없어 시작한 것이 배달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사례는 특수한 예외가 아니다. 

대학에서 전임 교원, 즉 교수가 아니면 잉여다. 어떤 이는 그것을 실력이 없어 교수가 안 된 것을 왜 제도 탓으로 돌리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차이가 차별이 되는 문제를 눈감는 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진보를 말하고, 정치의 후진성을 논하는 입으로 대학 사회의 차이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울림일 수밖에 없다. 

전임 교원들이 비전임교원인 강사들의 고용 불안 문제를 자신들의 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대학 사회 안에서의 차별의 악순환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함께 고민하자는 말이다. 지금같은 차별적 구조로는 전임교원들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대학이 최소한 학문의 공동체라고 한다면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언제까지 제도 탓으로만 돌리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외면할 것인가. 제발, 그 위선의 가면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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