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ㆍ춤ㆍ소리를 찾아서/심우성/ 각 / 2011

제주 BOOK카페  < 24 >

계간 《제주작가》 편집 간사를 한 적이 있다. 간사가 하는 주된 일은 원고를 취합하는 일이다. 그때 유일하게 원고지에 원고를 써서 보내오는 사람이 있었다. 민속학자 심우성이다. 솔직히 그때는 내가 민속학에 과문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다. 뒤늦게 그의 연구서를 접하며 그의 곧은 글씨체가 떠올랐다.

학자는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면 그 지역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는가 보다. 석주명은 경성제국대학 생약연구소(현재는 서귀포시 영천동에 있는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생물학뿐만 아니라 제주어까지 연구해 『제주도 방언집』(서울신문사, 1947)을 냈다. 심우성은 제주도로 이주해 ‘입춘굿’, ‘칠머리당 영등굿’, ‘마라도 이야기’, ‘해녀의 노래’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 책 『굿ㆍ춤ㆍ소리를 찾아서』(각, 2011)를 냈다.

‘부락’이라는 말보다 ‘마을’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건 이전에 알고 있었지만, ‘탈’이라고 하면 될 것을 ‘가면’이라고 한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가 많이 잃어버리는 것 중에 민속 분야가 많아서 그런지 그는 언어에 민감하다. ‘비나리’는 걸립패가 마당굿에서 고사문서를 외는 소리를 일컫는 말인데, 이런 말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마임’을 ‘발림’으로 부르자는 제안도 한다. 그 유명한 ‘사물놀이’를 작명한 사람도 심우성이다.

그는 제주도로 이주한 뒤 민속학의 사람들도 만났다. 칠머리당 영등굿 예능보유자 안사인과 김윤수,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 등이 그의 연구를 도왔다. 연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이 책은 연구서이면서도 에세이 스타일로 쓴 글이라서 그런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쉽게 썼다. “허허허” 하는 허탈한 웃음소리도 그대로 표기한다. 

그는 당연하게도 아리랑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여러 지역의 아리랑을 말하면서 우리의 춤과 노래가 서글픈 수난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본다. 

그는 학자이면서도 무대에 올라 1인극을 펼쳐 보이기도 했는데, 그가 행동하는 학자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위로한 <넋전 아리랑>을 연출하기도 했다. 2018년에 별세했다. 이듬해 그의 1주기를 기리며 공주민속극박물관에서 그에 대한 회고전과 공연이 열렸다. 회고전의 제목이 ‘심우성 아리랑’이다. 평생을 민속학 연구에 매달린 그의 생애를 보며 연구를 하려면 모름지기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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