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제3자 변제에 ‘굴욕정부’ 비판 제기
사실 인정과 공식 사과 통해 인간 존엄성 회복해야

강호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공공정책센터장 법학과 91학번ㆍ1997년 총학생회장
강호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공공정책센터장 법학과 91학번ㆍ1997년 총학생회장

부산 남구에 가면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있다. 국립이다. 반듯하게 올라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아픈 역사의 기록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강제징용의 대표적 사례로 영화로 알려진 ‘군함도’ 부터 위안부 할머니의 사연까지 확인 할 수 있다. 역사관 작은 한 켠에는 제주 곳곳에서 확인되는 ‘진지동굴’ 내용을 소개한다. 

10여넌 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해 공개한 일제 강점기 조선인을 강제노역에 동원했던 일본의 핵심 기업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였다. 이들 3대 재벌을 포함해 모두 23개의 일본 기업들이 당시 조선인 1만2598명을 일본 본토 등 국외 작업장에 강제동원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밖의 기업 사례까지 합산하면 당시 확인된 국외 노무동원 피해자만 총 6만3574명이다. 신일본제철의 전신 일본제철, 후지코시, 비철금속 분야 대기업인 도와홀딩스의 전신 도와광업, 홋카이도 탄광지대를 장악했던 북해도탄광기선, 히다치 등이 조선인 강제동원 주요 기업이다.

이후 정부에 접수된 강제동원 피해자 규모는 무려 22만명에 달하고 있다. 경북지역에서만도 2만 3000여명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제주에도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이상한 해법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있다. 우파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과정을 요약하면 대법원은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책임 있는 일본기업들이 위자료를 배상해야 했으나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해당 일본기업들도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지속적인 한일 간 외교적 이슈가 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으로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다. 법원이 강제징용 전점 기업에게 부과한 손해배상금을 한국기업들의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대신 배상하는 방식이다.

가해자는 사과조차 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스스로 돈을 내는 격이다. 지나가던 소도 웃을 결정이다. 일본정부나 일본 기업이 해야 할 일을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이 대신 해주는 셈이다. 헌법에서 규정한 삼권분립 원칙에서 보더라도 대법원 판결과는 거꾸로 가는 위헌적인 태도일 수 있다.  ‘굴욕정부’, ‘계묘늑약’ ‘조공외교’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이완용에 비유하는 현수막까지 거리에 내걸리고 있다. 3ㆍ1절에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내건 격이다. 

당장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일부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은 가해자의 사죄와 배상 참여가 없는 제3자 변제가 굴욕적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100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3월 6일은 제2의 국치일’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해법을 철회하라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강제동원 피해의 배상 문제는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권침해 사실의 인정과 사과를 통한 피해자의 인간 존엄성 회복과 관련한 문제”라며 “일본기업과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등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은 피해 회복과 화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설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해 6월 UN의 소위 과거사 특보가 한국을 찾은 일이 있다. 제주4ㆍ3유족을 비롯해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직접 만났다. 당시 파비안 살리올리 UN 진실정의 특보는 “국가는 개인의 인권침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유엔이 2005년 채택한 소위 과거사 청산 관련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상에는 ‘사실의 인정과 책임의 승인을 포함한 공식적 사죄’, ‘피해자에 대한 기념과 추모’ 등을 담고 있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관련 방침은 이런 기준에 제대로 부합하는 것이 없다. 곧 일본과 미국을 방문할 윤석열 정부는 이 기준이라도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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