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해변에서 혼자 / 김현 / 현대문학 / 2021

바닷가를 거닐다보면 속 빈 뿔소라를 발견하게 된다. 뿔소라는 조간대에 주로 서식한다. 뿔소라 빈 껍데기를 귀에 대면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난다. 그것은 어쩌면 뿔소라의 기억이다. 소라의 나선은 해류에 따라 형성이 된다고 한다. 마치 나이테처럼 바다가 만든 무늬인 것이다.

이 시집에는 두 편의 시 「뿔소라」가 있다. 앞에 실린 작품은 바닷가에 주운 껍데기에 대해서 말하고, 뒤에 수록된 작품은 그걸 갖고 집에 온 이후를 말한다. 그러니 뿔소라는 사랑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다. 두 편 모두 뿔소라에 귀를 대보는 장면이 있다.

뿔소라의 여행은 바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뿔소라를 여러 개 주워 집에 가져왔다가 어쩌지 못해 화분에 놓아둔 적 있다. 지금은 벌레들의 근사한 집이 돼 있겠다.

공간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존재의 정체성도 바뀐다. 누군가 뿔소라를 손에 쥐면 그것은 더는 뿔소라가 아니다. 며칠 전 철 지난 겨울 바닷가에 갔다. 삼양해수욕장을 거닐었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겨울 해수욕장이라 조용했다.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누군가의 발자국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적막할 때 더 잘 들리고, 분간이 더 잘 된다. 여름이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다.

서귀포 바닷가에는 소라의 성이 있다. 김중업 건축가가 지었을 거라는 설이 있다. 당시 김중업 건축가는 제주대학교 구 본관, 서귀중앙여중(당시는 제주대학교 수산학부 본관) 등을 설계했기에 이 건축물 또한 그의 작품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휘돌아 감기는 곡선의 미학을 담은 건축물이 김중업 건축의 특징을 나타낸다.

우리가 어떤 건축가의 건물을 기억하듯 우리는 어떤 유형에 맞춰 생각을 정리한다. 뿔소라의 평생도, 사람의 평생도 그 유형에 따라 무늬가 새겨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성격이 얼굴에 나타나는 모양이다. 뿔소라의 무늬처럼 감출 수 없다.

문제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질까지 바뀌는 점이다. 시인은 바닷가에서 들고 온 뿔소라를 보며 “뿔소라가 뿔소라일 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변화가 이루어지는 가능성에 대해서 시인은 말한다. 

요즘 해변에서 비치코밍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바닷가에서 해양 쓰레기를 줍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모은 쓰레기들을 재활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행동할 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일단 나도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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