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기고 / 공동자원을 활용한 청년배당 도입 방안

이재섭 공동자원과지속가능사회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이재섭 공동자원과지속가능사회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세상이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해 여전히 개인의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겉으로는 청년들을 응원하고, 청년 정책을 남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정책 안에 ‘청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정책에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현란하게 포장지만 바꾸었을 뿐 별다른 특색을 찾기 어렵다.

청년 문제가 대두되고, 청년 정책이 만들어진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그 진위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2016년 새해 경향신문에서는 청년을 주제로 한 연재를 시작했다. “n포세대, 흙수저, 헬조선… 희망 없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이야기가 이제 지겨울 법도 합니다. 그럼에도 2016년 화두로 다시 ‘청년’을 제시합니다.”라며 청년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언어로 담아냈다.

그들은 131일간 1500명이 넘는 청년들을 만난 기록을 『부들부들 청년(2017)』이라는 책에 담아냈다. 청년들의 언어와 목소리를 생생하게 반영했고, 청년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냈다. 

다시 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청년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특히 제주 섬에서의 청년 일자리는 대한민국 내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오늘날 청년들은 과거처럼 자기 세대가 전 세대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됐다. ‘흙수저’와 ‘헬조선’이라는 말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그것이 낳은 절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청년들은 더 이상 노력으로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정대연ㆍ송윤경, 2015). 

이와 같은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정책이 추진됐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2015년 서울시가 발표한 정책으로, 청년들의 자율적인 구직 및 사회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새로운 ‘청년안전망’ 구축 시범사업이다. 사회 진입의 초기 단계에 있는 미취업 청년층이 사회의 필요와 자신의 욕구에 맞는 진로를 폭넓게 탐색하며 자기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자기 설계를 가진 청년을 선발해 ‘최소 사회참여활동비’를 지원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청년자기개발비지원 사업을 진행하였다. 도내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구직활동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완화함을 목적으로 대상은 만 19세-34세 미취업 청년(중위소득 150%미만)으로 300여 명을 선정, 지원 내용은 구직활동과 관련된 항목으로 매월 40만 원을 2개월에서 4개월까지 자기개발에 사용되는 비용을 지원하였다(제주특별자치도, 2018).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고용노동부에서 2019년부터 시행한 지원 사업이다. 자기 주도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만18-34세)에게 월 50만 원씩 최대 6개월간 취업 준비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로 구직활동 계획서, 졸업 및 제적 증명서를 제출, 가구원 소득정보 및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온라인청년센터, 2019). 이와 같은 정책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지원받아야 할 사유를 다양한 서류로 직접 증명해야 했으며, 지원 기간도 제한적이며, 취업이라는 항목에 국한되었다는 한계를 보였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은 2015년 발표됐다. 이 정책의 목적은 청년의 복지향상과 취업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함에 있었다. 소득이나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연령에 맞는 모든 청년에게 지급되었으며, 자산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시민배당 개념의 청년 복지정책으로 3년 이상 성남에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2016년 1월부터 분기별로 25만 원씩 연 100만 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였다. 2019년에는 경기도 청년시민배당이 시행되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등 사회 변혁에 따라 심화되는 일자리 감소, 불평등, 양극화 해소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우선 청년대상으로 시민배당을 시행하여 청년들에게 정기적인 소득 지원을 통해 장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사회활동 촉진 및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였다. 만24세 청년에게 1인당 연간 최대 100만 원의 청년배당을 지급하였다(경기도, 2019). 그러나 이와 같은 청년배당은 일반 세수를 재원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에 수장이 바뀔 경우 지속가능한 정책의 실현에 제약을 가져왔다.

필자는 2019년 학술지 《경제와사회에 발표된 「제주도 청년배당 도입 방안ㆍ공동자원을 활용한 재원 마련을 중심으로」 연구(청년배당의 재원, 규모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에서 현재 제주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동자원을 통한 수익으로 경기도 규모의 청년배당이 제주도에서도 가능함을 논증한 바 있다. 이 재원은 시민 모두의 공동자원에서 나오는 수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모든 시민에게 시민배당을 실시하기에는 당장 활용할 재원이 매우 부족하기에 도민들이 가능한 많이 동의할 수 있으며, 전체 도민에게 최대한 골고루 미칠 수 있는 대상 선정이 중요하다. 이때 성인으로 사회적 부담을 져야 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와 시민적 권리를 누리게 하기 위해 청년배당을 제안했다. 또한 청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논의할 수 있다(이재섭ㆍ최현, 2019). 

청년배당과 다른 측면에서 사회적 지분 급여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토마스 페인으로부터 유래한 정책으로 액커만과 알스톳은 모든 청년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소중한 기회를 가져야 하며, 모든 시민이 인생에서 한 번 사회적 지분을 분배 받아야 한다며 “모든 자유로운 시민들은 성인기를 시작하는 21세에, 정부로부터 80,000달러의 사회적 지분을 받아야 한다.”(액커만ㆍ알스톳, 2006)고 주장한다. 이는 청년들이 성인이 될 때 의미 있는 자산을 갖지 못한 채 무거운 책임만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오늘날의 부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소수를 위한 거액의 상속을 모두를 위한 의미 있는 상속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국내에서도 2018년 지방선거에서 한 정당이 지역형 청년사회상속제 실시를 주장한 바 있다. 앞에서 살펴본 청년배당과 사회적 지분 급여 모두 청년에게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기본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정책임을 역설하고 있다.

현재 공동자원을 활용하여 실행되고 있는 유일한 시민배당으로 알려진 미국 알래스카주 영구기금배당금을 실현한 해먼드 전 주지사는 원래부터 시민의 소유였던 유전에서 나오는 수입의 일부를 시민에게 전했을 뿐이라며 시민배당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반스는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당연한 권리로서 어느 정도의 비노동소득을 받아야 한다.”(반스, 2014: 60)고 주장하며 공동자원을 활용한 시민배당을 정당화한 바 있다. 제주는 공동목장, 바다밭, 지하수와 곶자왈 등 전통적 공동자원을 지금까지도 유지해오며 공동자원에 대한 의식을 시민들이 가지고 있다(최현 외, 2016).

물론 제주의 공동자원도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그 기능을 상실하고 파괴되었으며, 그에 따라 공동자원에 대한 인식도 약화됐다. 하지만 제주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전통적 공동자원이 남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동자원에 대한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러셀(1997)은 “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으며, “선한 본성은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고,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게 된 평범한 사람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러셀, 1997: 33).

사실 러셀의 주장은 맹자가 2,300년 전에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표현했던 생각과 통하는데, 이 모두가 시민배당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시민들이 덕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공공선에 헌신하며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경제적 자립은 기본 조건이다(이재섭ㆍ최현, 2019).

게다가 그것을 보장할 생산방식을 현대사회는 마련했으며 그 생산방식 역시 인류가 함께 마련한 공동자원이다. 그리고 그 공동자원의 혜택은 불평등한 세상에서 새롭게 삶을 꾸려가야 할 청년들에게 응당 가장 먼저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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