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지리학 1호 박사
기자 생활하며 학위 취득
“100km 러닝과 같은 여정”

임재영동아일보 제주주재 기자

▶지리학 박사 과정을 시작한 계기는.

제주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어떤 어떤 관심분야를 가지면 좋을지 고민했다. 유배문화를 주제로 제주대 양진건 교수님을 인터뷰할 일이 있어서 기본 자료를 수합하다가 사회교육대학원 ‘자연ㆍ문화유산교육학과’를 알게 됐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학과가 수개월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2018년 자연ㆍ문화유산교육학과에 진학하고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이미 한라산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걷는 걸 좋아해 자주 한라산을 다니다보니까 궁금한 점이 많은데 인문학적 자료는 많이 없었다. 한라산의 동식물 등 자연생태나 지질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는 데 비해서 인문학적 연구는 미흡한 상황이다. 한라산의 인문학을 연구하자고 마음먹었고 정광중 교수님의 인도로 지리교육 전공 박사과정을 밟게 됐다. 그 과정에서 한라산인문학 1호 박사라는 타이틀을 목표로 잡게 됐다.

▶기자 생활과 박사 과정을 병행하며 어려웠던 점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도 수업에 꼬박꼬박 참여하려 했다. 발표도 수시로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나마 30년이 넘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여러 기사를 썼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렇지만 박사논문을 구상하고 작성할 때는 그야말로 화장실에 갈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집중해야 했다.

처음 100km 트레일 러닝을 할 때와 비슷했다. 60-70km 정도 가면 정말 힘들고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고비가 온다. 논문을 쓰면서도 잠깐 방향을 잃었을 때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쓰자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3일이 지나니 터널 끝에 다시 빛이 보였다. 

▶연구 과제로 한라산을 선택한 이유는.

제주도 초중고 교가 70%는 ‘한라산 정기’가 들어갈 정도다. 도외에서도 “한라산은 명산이다”라는 말에 이의를 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왜 명산이냐고 물으면 ‘남한 최고봉’, ‘수려하고 독특한 자연경관’ 등 몇 가지를 말하고 나면 말문이 막힌다. 이는 한라산이 품고 있는 가치를 규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 활동이 부족한데서 기인한다고 봤다. 물론 2006년에 한라산총서가 발간되면서 한라산에 대한 인식의 장을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전기를 맞았다. 여기에는 총론적인 내용이 많은데, 한라산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세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논문 ‘국가의 한라산 인식과 이용·관리에 대한 변천 연구’는.

한라산을 신 자체이거나 산신의 거치, 진산, 전설의 산으로 인식하는 시대에는 표현 방식으로 산신제 같은 제사의례가 뒤따랐다. 이용과 관리에 있어서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일제강점기로 오면 일본 제국주의적 자연관은 서구의 영향을 받아 약탈적이고 개발적 자연관에 바탕을 두게 된다. 신의 거처가 아닌 개발의 대상으로 보고 자원 약탈 방식으로 이용하게 된다. 해방 이후에는 자연에 대한 보호, 보전의식이 강해졌다. 국립공원, 세계자연유산 등으로 체계적인 관리를 받게 됐고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나 백두산과 한라산의 물과 흙을 합치는 행사를 하면서 통일의 상징으로 또는 홍보용으로 활용하게 됐다.

제주사람 그리고 조선과 한라산의 관계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000년에 걸친 한라산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처음에는 막막했다. 여러 고민을 하다가 오상학 지도교수님과 면담, 지도를 받으면서 국가의 관점으로 전개해보자고 방향을 정했다.

국가의 관점은 곧 인식으로 이어지고, 인식은 한라산에 대한 이용과 관리에 직결될 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다고 판단했다. 여러 논문과 자료를 보다가 자연관을 이론적 배경으로 정했다. 국가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면 인식과 이용, 관리에 대한 내용을 일관되게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자’와 ‘박사’가 주는 각각의 의미는.

기자로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기사화하면서 청춘을 보냈다. 기사 대부분에 ‘제주지역은’이라는 용어가 들어간다. 제주 곳곳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로서 ‘다양성’에 천착했다면 박사로서는 ‘전문성’을 갖췄다고 본다. 이 전문성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박사는 비로소 홀로 연구할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이라고 한다. 배워야 하고 읽어야 하고, 정리해야 할 논문과 자료가 쌓여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과 함께 한라산의 인문학, 자연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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