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우 편집국장
고지우 편집국장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A씨는 축제를 하루 앞두고서야 행사 개최 장소 사용 허가를 받아 냈다. 사전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했는데도 민원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제주 시청이 뒤늦게 태도를 바꾼 것이다. 끝나지 않는 행정소송에 지친 A씨가 시청에 면담을 요청했고, “소음 조심해달라”는 한마디와 함께 행사 장소를 되찾았다. 같은 날 시청 입구에서는 동성애 반대 시위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행정에서 소수자가 배척되는 흔한 사례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인천대공원사업소에 장소 협조를 부탁했지만 “법률이 규정한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노골적인 통보를 받았다. 도시공원 곳곳에서 각종 축제가 문제없이 열리는데 퀴어문화축제만 불허했다. 형평성을 상실한 차별 행정이다.

헌법이 보장한다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서 소수자는 늘 뒷전이다. 집회를 반대하는 데 ‘성적 지향성’은 타당한 사유가 되고, ‘혐오’는 마땅한 근거가 된다. 폭력적이고 거센 혐오 세력을 견디기에 우리나라 행정은 힘이 없다. 유엔이 몇 차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도 묵묵부답인 까닭이다.

반대 측은 이 법이 ‘가정 파괴’, ‘교육 파괴’, ‘종교 파괴’를 부른다고 주장한다. 순직을 인정받지 못한 변희수 하사, 교육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청소년 성소수자들, 질타 속에서도 성평등을 외치던 임보라 목사. 이들이 그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들이야말로 ‘파괴’ 당한 셈이다.

차별을 법으로 막는 민주주의 국가. 진전일까 후퇴일까? 평등을 쟁취해야 하는 이상 이 움직임은 진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차별금지법은 행정뿐 아니라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 범위에서 발생하는 차별에 제동을 걸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상에 만연한 차별을 어떻게 다섯 영역으로 나누겠는가. 우리의 일상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다.

차별금지법이 이름만 거론되길 벌써 20년째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반대측이 문제 삼는 항목은 여전히 ‘성적 지향ㆍ정체성’이다. 반대측에서는 차별할 자유를 조금도 잃고 싶지 않겠지만 통계는 종교의 고령화를 경고한다. 곧 ‘소수’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배리어프리(장벽 없애기) 사업으로 설치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에게도, 임산부에게도, 무거운 짐을 들고 상경한 청년에게도 편리하다. 차별금지법은 나와 당신을 위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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