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월이다. 사월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한결같다. 75년 전의 그날을 우리는 여전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보고서가 작성되고, 희생자에 대한 실질적 명예회복 조치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사월은 시리고 아프다. 여당 최고위원이 제주 4ㆍ3을 폄훼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서북청년단의 이름을 소위 계승한다는 세력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

화해와 상생, 평화를 기원했던 제주의 염원을 배반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작금이 상황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제주 4ㆍ3이 오늘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진상조사보고서와 제주 4ㆍ3 특별법의 규정에 따르면 제주 4ㆍ3은 1947년 3월 1일의 발포사건과 이듬해 벌어진 4월 3일의 무장봉기, 그리고 이어진 토벌 과정에서의 대규모 학살이다. 진상조사보고서와 특별법 체제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상상은 여전히 무고한 희생에 방점을 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불참한 올해 추념식에서 한덕수 총리는 무고한 희생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것은 대통령의 개인적 발언이 아니었다. 보수 정당의 4ㆍ3에 대한 의미 규정만도 아니었다. 물론 제주 4ㆍ3 유족회 등 4ㆍ3 관련 단체들의 비판적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비판의 근저에는 제주 4ㆍ3에 대한 진정한 명예회복, 나아가 제주 4ㆍ3의 정명문제가 맞닿아 있음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75년이 지났다. 정당한 봉기의 대가가 참혹한 학살로 귀결됐다는 사실은 비극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일은 제주 4ㆍ3이 여전히 오늘의 문제라면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하는 근본적 질문이다.

민주공화정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시민적 저항권을 옹호하는 체제라면 과연 제주 4ㆍ3은 무엇인가. 75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화해와 상생이 이니라 산으로 올랐던, 분단을 거부했던 해방공간의 정념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는 것에 방점을 둬야 한다.

제주 4ㆍ3. 화해와 상생, 비극적 죽음으로 점철된 질곡의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역동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사실로 제주 4ㆍ3을 바라보야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제주의 사월은 해방공간의 단독적 ‘사건’이 아니다. 조선의 자주 독립과 평화적 통일을 원하는 당대 민중의 열망을 대변하는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역사가 소수의 권력자가 만들어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민중적 생성의 가능성에 대한 역사적 신뢰의 선택이었다.

이제 75주년. 우리는 제주 4ㆍ3을 과거의 박제된 사건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오늘에 말을 거는 현재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현재를 성찰하는 오늘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제주 4ㆍ3을 과거가 아니라 오늘로 인식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그래서 제주 4ㆍ3은 늘 현재이며, 제주는 언제나 4ㆍ3을 사는 것인지 모른다. 더 좋은 삶,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는 역동의 힘. 그것이 오늘의 제주 4ㆍ3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의 의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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